등록 : 2019.04.05 06:01
수정 : 2019.04.09 17:24
|
일러스트 장선환
|
[책과 생각] 이숙인의 앞선 여자
|
일러스트 장선환
|
서자 서녀 가운데 부모의 재능이나 자질을 물려받은 자가 없을 수 없지만 역사는 그들의 존재를 숨겨왔다. 조선에서는 약간의 벼슬이나 학문만 있어도 그것을 기반으로 자녀들의 앞날이 열렸건만, 친가 외가가 아무리 대단해도 서녀 서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선시대 기억의 계보에서 서자 서녀는 분명 거추장스런 존재였다. 다만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특출한 자들이 있어 숨바꼭질 하듯 그 모습이 드러나곤 한다. 서녀로 태어난 사임당의 두 손녀가 그들이다.
신사임당은 화가이자 율곡의 어머니로 역사에 화려하게 등극하여 수세기가 지나도록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반면에 생전 그의 삶은 빈궁할 정도로 고단했다. 그림도 생계를 위한 절박한 상황에서 창작되었을 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사임당은 행장에도 소개된 바 “활달한 성품으로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아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았던” 남편을 대신하여 많은 식구들을 건사하며 또 혼을 담은 작품들을 그려낸, 이른바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 그녀의 자녀 가운데 한 딸과 두 아들 즉 이매창(李梅窓)·이이(李珥)·이우(李瑀)는 예술 또는 학문 등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 되었다. 그들의 출중한 재능과 노력하는 습관 등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산일 것이다. 사임당의 유산은 손녀들에게도 나타났다. 그 시대는 개인의 자질보다 우선하는 자격이 있었는데 양반의 적자여야 하는 것이다. 이이가 학문으로 입신하고 이우가 예술로 명성을 얻은 것도 이 전제 위에서 가능했다. 반면에 서녀로 태어난 손녀들은 재능과 덕성을 갖추고도 가족의 변방에서 서성이는 삶을 살았다.
사임당의 손녀이자 율곡 이이의 딸은 김장생의 아들인 김집(1574~1656)의 측실이 되었다. 서녀로 태어났기에 첩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자녀들은 자동적으로 서자 서녀가 되었다. 율곡은 정실부인 노씨가 오랫동안 아이를 얻지 못하자 양반의 서녀를 부실로 얻어 2남 2녀를 얻는다. 그의 득남이 인생 말년에 이루어진 것임을 볼 때 그 시대의 가치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태어난 서녀 이씨는 정신 질환을 앓던 김집의 본 부인을 대신하여 온 집안 대소사를 주관하고 시아버지 김장생을 30년간 효심으로 모셨다. 영민하고 현철하여 칭송이 자자했던 그녀와 율곡 이이를 외조부로 사계 김장생을 조부로 둔 그녀의 아들들. 율곡과 사계를 계승한 노론의 정국임에도 서자 신분의 그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사임당의 또 다른 손녀이자 이우의 딸인 이씨(1584~1609)는 이시발(1569~1626)의 측실이 되었다. 그녀는 덕행과 재능이 뛰어났고 그림과 시에 능했으며 십대에 문장을 짓고 백가서에 통달했다고 한다. 할머니 사임당의 화풍을 계승한 아버지 이우는 시·서·화·금(琴)을 다 잘하여 4절(四絶)이라 불렸다. 이씨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우는 서녀인 딸의 운명을 매우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이씨를 부실로 얻고자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이시발의 고백이 이를 뒷받침한다. 덕수 이씨는 16살 연상의 남편과 혼인한지 10년만에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2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남편은 절절한 사연을 담아 그녀를 위한 제문을 썼다. “자네는 과연 총명하고 영특한 재주와 단정하고 정숙한 자질이 보통 규수에 비할 바가 아니었네. 문사에 해박한 것, 거문고와 바둑에 능한 것, 자수나 서화에 뛰어난 것들은 그 밖의 일이라 할 수 있지”(<벽오유고·제측실문>) 제문은, 이씨가 서자로서 세상을 살아야 할 자식들에게 얼마나 혹독한 교육을 행했는가를 보여준다. 뜻이 통했는지 그녀의 장남 경충은 무과에 급제하여 아버지를 따라 이괄의 난을 진압하여 공을 세웠고, 차남 경선은 진사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리고 <경주이씨세보>에는 이씨를 이시발의 배우자 “정경부인 덕수이씨”로 기록하고 있는데, 아들들의 활약으로 사후에 정실의 자격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벽오부인’으로 알려진 사임당의 손녀 이씨의 작품으로 묵죽(墨竹) 4폭이 전해온다.
조각난 기록들을 맞춰보면 두 손녀는 신사임당 못지않은 재능과 자질을 가졌던 것 같다. 서출에 여성이라 자신의 재능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조차 버거웠을 그들. 이러한 차별로 역사 속 많은 이들이 아픔을 안고 사라졌을 것이다. 오늘 우리 안의 차별도 누군가의 재능이나 노력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살펴볼 일이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