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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3 06:00 수정 : 2019.05.03 19:52

남성들의 용변 후 ‘손 씻기’ 문제는, 사실 페미니즘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두 번 반복된 일이 아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책과 생각] 이민경의 유연하고 단단하게

남성들의 용변 후 ‘손 씻기’ 문제는, 사실 페미니즘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두 번 반복된 일이 아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 중앙일간지 인터넷판에 어느 국립대 남성 명예교수가 ‘용변 본 뒤 손 씻지 않겠다. 공중화장실에선 더더욱!’이라는 칼럼을 실었던 날짜가 언제고 하니 4월16일이었다. 대변과 소변을 보고 난 뒤 왜 손을 씻지 않아도 되는지를 장황하고도 진심 어리게 담아냈던 글이었다. 보름 지난 글을 이 곳으로 다시 부른 계기는 국내 에이(A)형 간염 환자가 급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다. A형 간염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분변을 통해 전염되는 질병이고, 손 씻기로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매개자이거나 앞으로 매개자가 될 것으로 우려되는 집단이 뚜렷해, 비위가 약해 제대로 읽지 않았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본 것이다.

엄청난 수의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거대한 여성 거래 카르텔을 타격하느라 바쁜 와중에 대두된 남성들의 ‘손 씻기’ 문제는, 사실 페미니즘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두 번 반복된 일이 아니다. 페미니즘이라 부를 수 없는 기초위생 문제가 해당 논쟁에서 다뤄진 까닭은 식당 남자 화장실의 물비누가 6개월째 개봉이 안 되었다더라는 인터넷 괴담, 남자는 17%만 손을 씻는다는 <제이티비시>(JTBC) 보도같이, 매번 사건은 달라지지만 남성들의 반응이 ‘소중한 부위는 만지고 씻는 게 아니라 손을 씻고 만져야 한다’는 것으로 일관되어서다.

2016년 1월7일 <제이티비시> ‘뉴스룸’에서 보도한 조사에선, 한 대학에서 남자 대학생 157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설문조사로 물어봤을 때는 94%가 "화장실 이용 후 손 씻는다"고 답했지만 연구진이 몰래 따라가 관찰해 보니 실제 씻는 경우는 17%에 불과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출처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 트위터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문제가 페미니즘 이슈라 불리지 못할 것도 없다. 1800년대 헝가리 출신 오스트리아 남의사 제멜바이스는 산모의 사망률이 의료인이 담당한 병동은 높은데, 산파가 아이를 받은 병동은 낮은 현상에 의문을 품고 그 원인을 찾아 봤다. 그 원인은 손 씻기 여부에 있었다. 제멜바이스는 동료 의사들에게 손 씻기를 권했지만 무시당했고 갈등에 휘말려 결국 정신병동에 감금돼 생을 마감했다. ‘신사의 손은 더럽지 않다’는 이유였다. 아까는 ‘소중이’고 이번에는 ‘손’이다. 남성만 의사가 되던 시절, 남성인 덕에 의사가 된 자들이 환자 사망의 원인을 찾은 뒤에도 신사라는 고집으로 숱한 여성을 죽인 것이다. 실화임에도 의료권력을 독점한 남성이 여성의 신체에 저지르는 폭력에 대한 우화처럼 들린다. 실제로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10명 중 1명이 산부인과에서 폭력을 경험하는 문제로 싸우고 있다. 전에도 같은 지면에서 언급한 적 있지만 한국도 다름 아니다.

손을 씻지 않아도 되는 이유의 저변에 깔린 남성 성기에 대한 자부심 혹은 신성시는 2015년 이후 일어난 페미니즘이 타격한 핵심적인 소재였으므로, 생각할수록 페미니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동에서 낙타가 몰고 와 페미니즘을 퍼뜨렸던 메르스 사태와 같이 주요한 보건 위기로 번지지 않기 위해, 운동을 퍼뜨리려 3년간 일관했던 전략을 깨뜨리고 남성에게 말을 건다. 여성 팬의 정서적, 금전적 지지를 등에 업고 성장한 남성 아이돌들이 속속 되돌려주는 결과가 각종 흉악범죄인 작금의 사태에서, 직관을 실어 이야기하고 비판하고 실천을 촉구하고 직접 행동을 조직하기로 여성에게만 말 걸었던, 제법 성공한 그 전략을 구사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인식의 격차도 한몫했던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성들에게 말 거노니 페미니즘까지는 안 가도 되니까, 신사들이여 부디 손을 씻읍시다. 만지기 전이든 후든 두 번 씻읍시다.

작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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