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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3 18:09 수정 : 2019.10.13 22:10

[판을 바꾸는 언니들⑪] 백희원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88올림픽’이 끝나고 태어났다. 스무살이 되던 해, 실력만 있으면 유리천장쯤은 부술 수 있다는 ‘알파걸’이 등장했다. 서른이 되자 직장에선 자책감을, 가정에선 죄책감을 느끼는 ‘슈퍼우먼’ 선배들이 보였다. 여성의 생존과 성공에 대한 서사는 늘었지만,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판의 기울기는 변함이 없었다. 이 판 자체에 균열을 내는 방법은 없을까. ‘알파걸’도 ‘슈퍼우먼’도 주지 못한 답을 찾고 싶어, 또래 여성들을 만나러 나섰다.

백희원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을 “삶에서 경험하는 문제들을 사회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미래가 조금 먼저 당도한 듯했다. 지난 8월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서교빌딩 지하 강당의 열기는 바깥보다 뜨거웠다. “내년 총선에 나가겠다”는 2030 여성과 성소수자가 각자의 공약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평등, 동일임금 동일노동, 난민, 이주민, 안전, 다양성, 비혼을 말했다. 내년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양성하는 녹색당의 ‘2020 여성출마프로젝트’ 참가자들이 한달여간의 교육을 결산하는 자리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백희원(32)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한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 페미니즘 확산과 함께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여성의 목소리가 내년 선거 때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까, ‘정치의 세대교체’가 가능할까 궁금증이 많았던 터라 그에게 현장의 고민을 듣고 싶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삶에서 경험하는 문제들을 사회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1. 녹색당, 여성, 청년, 그리고 정치

―안녕! ‘2020 여성출마프로젝트’를 흥미롭게 지켜봤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어?

희원 쇼케이스 행사 때 출마를 결심한 참가자 한 분이 녹색당에 들어오고 나서 롤모델을 발견했다고 하더라고. 지난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내세워 출마한 신지예를 보고 녹색당에 들어왔다는 분이야. 사실 녹색당의 리더십은 ‘여성 과반’이 원칙이다 보니 활동하는 여성 정치인이 많거든. 지난 총선 때 녹색당은 0.76%를 득표한, 정말 작은 정치세력인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세계가 되게 넓게 느껴지는 거야. 여성, 청년, 소수자가 안전하게 롤모델과 동료를 찾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한국에 있을까? 녹색당이 아직 작지만 가능성이 넓고 큰 공간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어. 50% 가까운 지지율을 받는 당에선 절대 하지 못할 일이란 생각이 들어 이 일이 의미있게 느껴지기도 했고.

―여성의 목소리가 최근 거리에 많이 쏟아져 나왔잖아. 이렇게 변한 온도가 제도나 정책에까지 반영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요즘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

희원 아무래도 인적 구성의 변화가 중요한 것 같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인 것도 같지만ㅎㅎ 여성, 소수자가 국회에도 들어가야 하고 기업에서도 높은 자리에 많이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실 정치적 세력화도 필요하잖아. 선거제 개혁과 미디어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들이 굉장히 복잡하니까 논의가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아. 그중 하나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처럼 정책 중심으로 정당에 투표할 수 있는 선거제도라고 생각해.

녹색당 ‘2020 여성출마프로젝트’ 쇼케이스 행사 이후 참가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녹색당 제공

―요즘 소위 ‘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잖아. 진보 진영 안에서도 많은 갈등을 겪고 있기도 하고.

희원 지금이 과도기 같아. ‘86세대’ 비판이 많이 나오는 건 그만큼 우리 세대가 크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해. 원래 이전 세대를 비판하면서 등장하는 게 다음 세력이잖아?ㅎㅎ 내가 딱 ‘88만원 세대’ 시기에 대학을 다녔는데 이제 ‘N개를 포기한’ 세대(N포세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제시해야 할 책임을 갖게된 것 같아. ‘86세대’는 진보 대 보수란 구도, 그 이전의 산업화 세대는 지역 구도로 정치적 전선을 그었다면 지금 우리는 젠더, 정체성, 소수자 등 다양한 영토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시기인 것 같아. 한명의 절대적인 리더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여러 행위자들이 판 안에서 다양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협력하는 게 우리 세대의 경향 같기도 하고. 이질적이어서 빠르게, 규모화있게 조직되지는 않지만 더 창조적이지.

―나도 지금이 뭔가 한국사회의 전환기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 아닐까.

희원 이전 세대가 만든 민주주의를 고쳐써야 하는 것 같아. 훨씬 복잡하지. 관성과 싸워야 하는데 그 관성엔 ‘악’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선악’이 공존돼있거든. 질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구원한다’고 생각해.개인주의라는 게 연대를 깨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떤 개인도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 그런 개인주의를 지향할 때 공동체도 살 수 있다는 거지. 개인의 쉼이나 돌봄이 보장될 때 생산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기도 하고. 개인의 안전이 보장될 때 자유도 가능한 거라고 생각하고. 사회 공통의 안전이 보장돼야 다양성도 함께 지향할 수 있는건데 그 안전을 만드는 기반 중 하나가 나는 기본소득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를 돕는, 자선의 범위를 넓히는 방식의 정치가 아니라 ‘누구든 주체가 되는’ 환경을 만드는게 정말 ‘모두를 위한 연대’ 아닐까.

백씨는 “섬과 섬을 잇는다”는 표현에 주목했다. “각자가 바라보는 풍경이 필연적으로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차이를 토론할 수 있는 정치로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도적인 민주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섬’ 자체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그 섬들을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개인의 목소리를 하나로 뭉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다원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더 큰 힘이 되는 것, 백씨가 추구하는 ‘연대와 협력’의 모습이다.

희원 하나만 더 얘기하고 싶어.

―어떤?

희원 나는 ‘약자의 정치’가 아닌 ‘약자성의 정치’를 하면 위험해지는 것 같아. 정치를 하면서 ‘우리가 더 약자다’라는 당위나 논리를 세우고 퍼트리면서 세를 키우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어느 순간까지는 빠르게 집단화하는데 쉽겠지만 헤게모니(주도권)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 같거든. 예를 들어 “386세대보다 청년들이 약자니까 비켜라”가 아니라 “당신들이 보지 못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비켜라”라고 말해야 한다는 거지. 난 우리가 협력하고 협업하는 데 굉장히 열려있는 세대라고 생각해. 제대로 된 사회시스템으로 바꾸라고 말할 때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개인의 목소리를 인정하고 협력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대가 되지 않을까 싶고.

백희원은 녹색당 2020출마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했다. 녹색당 제공

#2. “내 자리에서 싸울 수 있는 언어를 만들거야”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IYN·기청넷) 설립 초창기에 합류해 7년 동안 기본소득을 알리는 활동가로 살아왔잖아. 원래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

희원 처음부터 활동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야.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전형적인 ‘문과생’이었지. 대학에 갈 때까진 “실격당하면 안 된다”정도의 감이 있었고, 특별한 꿈을 가진 건 아니었어.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는 시기에 대학을 다녔거든. 그 때를 돌아보면 금융위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용산 참사, 쌍용차 희망버스처럼 거리의 투쟁이 많았던 시기였다고 기억해. 서울 시내 한바퀴를 돌다 보면 투쟁 현장들을 만날 수 있던, 그런 풍경이었지.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사회적으로 부당한 것에 맞서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가 돼야 한다 이런 느낌은 있었는데 내가 뭘 할 수 있는진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더라고. 학내엔 운동권 문화도 거의 없어졌을 때였고. 일상을 잃어버린 광경을 보면서 슬픔은 많이 느끼는데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 고민스러웠던 시기였어. 또 다른 고민은 “내가 노동시장에서 팔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였어. 대학까진 어떻게 왔는데 취직을 위한 경쟁과정의 비효율성을 못견디겠더라고. ‘어떻게든 되겠지’싶던 중에 ‘기청넷’ 설립 준비를 하던 친구가 “너 글 쓰는 것 좋아하니까 기본소득을 주제로 인터뷰하는 프로젝트 해볼래?”라고 물었어. 그게 시작이야ㅎㅎ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갔다가 1년 동안 좌충우돌했지.

―‘기청넷’ 활동은 어땠어? 기성 시민단체와는 다른 점이 있어?

희원 ‘기청넷’은 활동가 5명이 중심이 돼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어. 이젠 100여명의 회원이 있고. 기본소득 운동단체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금 시대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민운동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만들어나가는 곳이라고도 생각해. 우리는 법인화하거나 상근자를 두는 대신 직장을 다니며 프로젝트별로 일했어. 전업으로 활동을 하게 되면 개인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 외부 후원이나 정부 사업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조직의) 지속이 어려워지는 순간엔 조직 운영과 활동의 우선순위를 다시 논의하고, 책임과 권한을 최대한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을 했어.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 모습. 백희원 제공

―활동을 하며 어떤 고민들을 해왔는지 궁금해.

희원 제일 답답했던 건 어떤 조직인지 이해받지 못한다는 거였어. ‘기본소득이면 무슨 당파야?’라고 묻거나 다짜고짜 ‘학생운동의 역사’부터 알려주려고 하고ㅎㅎ 활동가들에게도 일종의 (정해진) ‘커리어 패스’ 같은 게 있거든. 그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활동 자체가 이해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더라고.

―고민의 답은 찾았어?

희원 음…자기 자리에서 싸울 수 있는 언어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설령 우리 윗세대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 다음 세대는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언어. 내가 민주화 이후에 태어나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거든.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하는데 긴 시간이 걸렸고, 실제로 그 성취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일상이나 조직 안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하는 것들 있잖아. ‘민주주의’에 포함된 개념을 재정의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 예를 들어 ‘요즘 청년’들은 위계가 명확한 공동체 문화나 다양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걸 싫어하는거지, 연대가 필요없다고 하는 건 아니거든. 1987년도의 관점에서 우리의 활동을 계속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 하지만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게 아니라 가장 취약한 개인이 연결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방식도 연대고 정치라는 걸 새롭게 보여주는 언어를 갖는 것, 그게 우리 세대의 민주주의 과제 같아.

―내 또래인 30대 여성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웃음이 빵 터지면서도 새겨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어. “내 밑세대가 꺼지라고 할 때 잘 꺼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야ㅎㅎ 나도 최근에야 ‘나의 삶’만이 아니라 ‘내 다음 세대를 위한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더라고.

희원 지인 중에 작은 독립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에 도움이 될까”란 고민을 하는 분이 있어.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하지 않는 고민을 단칸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기청넷’ 활동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의 고민도 “우리를 어떻게 구원할까”가 아니었어. “우리의 활동 영역이 다음 세대를 착취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하면 유연한 구조로 바꿔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거든. 이건 앞 세대에 대한 반면교사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아. 이 안에서 버텨서 뭐라도 바꾸면 다음에 올 사람이 이거보단 나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ㅎㅎ

‘보스턴피플팀’이 꾸린 생활동반자법 관련 행사들

#3. 정책이 내 삶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도록

그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안의 ‘보스턴피플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혈연 아닌 가족과 생활을 꾸리고 싶은 개인이 모여 생활동반자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행동하는 팀’이다. 백씨도 7년째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보스턴피플팀’은 생활동반자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기 위해 팟캐스트를 만들고, ‘생활동반자의 밤’ 파티를 연다. ‘여성 1인가구를 위한 생활강의’를 진행하는가 하면, 이달엔 ‘내가 원하는 생활동반자 법안 만들기’ 세미나를 열었다.

―가족의 의미도 새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아. 요즘 비혼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이들도 늘었고. ‘생활동반자법’에 주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

희원 나도 지금 친구랑 같이 살고 있거든.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이 안정감을 갖게되는 걸 보면서 “가족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생활공동체인 우리는 왜 (그런 안정감을 갖는게) 안 되지?”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고. 비혼이라고 해도 사실 다양한 이들과 같이 사는 방법도 있잖아. 그런데 비혼을 결심하면 “홀로 살아남을 거야”란 식으로 귀결되는게 아쉬웠어. 여러 방안을 두고 고민할 선택지 자체가 없는 거야. 정책이 삶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는 거지.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정책 입안을 주장하는 활동을 해보게 됐어.

―‘생활동반자의 밤’ 파티는 어땠는지 궁금해ㅎㅎ

희원 결혼을 위한 소개팅 파티 같은 것 있잖아ㅎㅎ 그걸 참고한건데 비혼이거나 미혼이거나 혼자 사는 여성인데 다른 여성들과 함께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했어. 40명 정도 와서 돈, 직업, 운동, 취미처럼 관심있는 주제별로 이야기를 해보고 각자가 원하는 생활동반자법 법안도 만들어 보고ㅎㅎ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한 분들이 와서 재밌었어. ‘동반생활 체크리스트’같은 것도 만들어봤어. 나는 청결함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활동적인 사람인지, 아니면 ‘집순이’(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등 리스트를 만들어보고 내 생활 방식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진 거지. 페미니스트 안에도 결이 다양하잖아. ‘진정한 페미니스트란 누구인가’란 주제로만 서로 만나는 게 아니라 ‘함께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어떤 집이 살만한가’ 이런 주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연대의 인프라를 쌓는 일이라고 생각해.

백희원은 “페미니스트가 되고 나서 타인을 믿어주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4. 내 삶의 문제를 보편적인 언어로 말한다는 것

“페미니스트가 되고 타인을 믿어주는 힘이 생겼다”고 백씨는 말했다. 갈등을 외면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맞서는 힘도 생겼다. 기존 질서 안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방식의 판을 만들어보려고 할 때, 다른 여성도 자신에게 신뢰를 보내줄 거란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백희원의 ‘페미니스트 모멘트’는 언제야?

희원 매일매일이지ㅎㅎ 조금 식상하지만,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란 말이 있잖아. 2016년 이후 페미니즘이 확산하면서 나의 경험이 다른 여성, 소수자들도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란 걸 알게 됐어. 내 목소리를 솔직하게 내기 어려웠던 적이 있거든. 그게 사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연결된다는 걸 깨닫게 됐지. ‘내 삶의 문제를 보편적인 언어로 말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구나’란 것도 알았고. 이런 깨달음이 기본소득 관련 활동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어.

―목소리는 왜 내기 어려웠던 거야?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어?

희원 그런 경험 많이 하지 않아? 음…어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여성은 고군분투할수록 대개 인정이 아닌 비판을 받더라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해? ‘너무 오버하는 것 아냐?’는 식이지. 이런 때 리더십을 더 발휘하고자 하면 충돌도 일어나고. 결국 여성은 신뢰를 잃고 정작 물러서 있던 남성이 주요 권한을 갖는 모습을 자주 봤어. 여성이 어떤 문제에 맞설 땐 그게 도리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는 개인을 본 거지. 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해가는 일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 주장도 힘을 잃지 않을지, 과연 그게 내가 정말 틀려서인지 하는 고민이 종종 들곤 했거든. 페미니스트가 되고 나서야 옳지 않은 부분에 명확하게 선을 긋는 용기가 나더라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을 더 믿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

그는 ‘판을 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기본소득, 생활동반자법, 여성 정치인 출마 프로젝트까지 그가 해온 다양한 활동은 결국 사회에 다양한 삶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틈을 만드는’ 일이다. “판이 바뀌는 과정에 오늘, 여기에 필요한 관점을 견지하고 공유하는 것, 그와 동시에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그의 목표다.

“우리 세대 안에도 숨어있는 가치와 역량이 많다고 생각해. 당장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해야 하니까 위악적이거나 이기적으로 보인다는 말이 많이 나오지만 그건 어떤 증상이지 본질은 아니야. 희망을 제일 많이 보는 건 페미니즘 안에서 여성들이 연대할 때인 것 같아. 내가 하는 이야기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잘 살아남고 싶어. 그럼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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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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