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한국영화 100년 빛과 그림자 ④북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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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찌산의 처녀>를 표지로 발행한 중국 영화잡지 <대중전영> 1955년 15호. 오른쪽은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문예봉. 한상언영화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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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반쪽의 영화사’
주인규·문예봉·박학·윤용규 등
월북한 서울 영화인들 맹활약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가을,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가 개봉되었다. 독립의 염원과 해방의 감격을 표현한 이 영화는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중국으로까지 수출되었다. 중국에서 장제스 당시 국민정부 주석이 <자유만세>를 보고 “자유만세, 한국만세”라는 휘호까지 써서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항일영화인 이 영화는 2007년 등록문화재 제343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자유만세>는 해방 직후의 관객들이나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이 관람했던 그 영화가 아니다. 해방 후 좌우갈등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박학, 독은기 등 북으로 간 배우들을 화면에서 지워버리고 비슷한 인물로 그 빈틈을 메우고 나서야 공개될 수 있었던, 어찌 보면 크게 훼손된 영화이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이하면서 오랫동안 유령처럼 존재했기에 그 실체를 인정받지 못했던 북으로 간 영화인들의 생애를 돌아보게 된다. 이는 그동안 크게 축소되어 기록되거나 왜곡되어 기억된 이들을 제대로 된 자리에 위치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더불어 아직도 낯설기만 한 미지의 북한영화를 탐구하는 촉매가 되어 민족의 영화사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는 의의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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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규 감독이 연출한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맡은 우인희. <춘향전> 특집기사가 실린 <조선영화> 1959년 3월호. 한상언영화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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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월북 영화인들의 활약 해방 후 영화 제작 인프라가 전무한 북한에서는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간 영화인들에 의해 영화 제작이 시작되었다. 시설과 자재, 인력을 확충하는 중차대한 임무는 나운규가 만든 <아리랑>(1926)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주인규가 맡았다. 해방 전 함흥을 중심으로 한 적색노조의 중요 지도자 중 한명으로 오랜 기간 복역하기도 했던 그는 해방 후 북조선영화동맹 위원장, 북조선영화촬영소 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북조선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최초의 극영화는 <내 고향>(1949)이다. 북한영화의 가장 앞 페이지에 놓인 이 영화에는 “3천만의 연인”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던 문예봉과 박학, 심영 등 월북한 유명 배우들이 총출연했다. 북한 정권 수립 1주년 기념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배우이자 가수로도 유명했던 강홍식이 연출을 맡았는데 그는 강효실의 부친이자 최민수의 외조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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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발발 직후 4·19를 소재로 만든 북한영화 <항쟁의 서곡>. 이 영화는 월북 영화인 강홍식이 연출을 맡았고, 심영, 김연실 등이 출연했다. 한상언영화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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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 북한영화를 이끈 인물로는 윤용규와 박학이 꼽힌다. 1949년 남한에서 함세덕의 <동승>을 원작으로 한 <마음의 고향>을 연출하여 큰 주목을 받았던 윤용규는 한국전쟁 중 월북하여 <소년빨찌산>을 시작으로 <빨찌산의 처녀>(1954), <신혼부부>(1955), <춘향전>(1959) 등 1950년대 주요 영화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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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북한영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박학이 표지에 실린 <조선영화> 1965년 10월호. 한상언영화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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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규가 1950년대 북한영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라면, 박학은 1960년대 북한영화의 대명사로 불린다. 단독정부 수립을 앞둔 1948년 월북한 박학은 주로 영화배우로 활동하였는데, 1961년 북한에서 첫번째 인민상 계관작으로 선정된 <분계선 마을에서>를 시작으로 영화 연출도 겸하기 시작했다. 그는 <붉은 선동원>(1962), <한 지대장의 이야기>(1966), <꽃 파는 처녀>(1972) 등을 연출하며 천리마 시대 북한영화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영화예술론’ 집필 김정일 위원장
60년대 북한영화 세대교체 주도
‘꽃파는 처녀’ 등 명작 르네상스
조총련과 합작 위해 일본 촬영도
■ 세대교체 주도한 ‘막강 제작자’ 김정일 1960년대 후반 이후 북한영화계는 김정일이 이끌었다. 1964년 제작된 <성장의 길에서>를 시작으로 북한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지도를 시작한 그는 1967년 영화문학창작사에 대한 사상투쟁회의와 1968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들에 대한 사상투쟁회의를 주재하며 부르주아 사상이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은 강홍식, 문예봉, 윤용규 등 중요 영화인들을 촬영소에서 추방시키며 세대교체를 주도했다.
영화 분야에서 인적 교체를 통해 당내 영향력을 강화해나간 김정일은 김일성의 항일유격투쟁 시기의 전통을 북한 문예의 혁명전통으로 완성시키는 데도 박차를 가하였다. <피바다>(1969), <한 자위단원의 운명>(1970), <꽃 파는 처녀> 등 항일유격투쟁 시대에 창작되었다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들이 김정일 주도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대작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고 수준의 영화인들로 구성된 백두산창작단이 조직되었다. 이곳에서는 김일성과 김일성의 가계를 우상화하는 영화를 주로 제작했다. 김정일은 선전선동부에서 영화 활동을 지도하면서 체득한 이론을 구체화하여 <영화예술론>(1974)을 집필하였고 이는 주체사상에 입각한 문학예술론의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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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분계선 마을에서>에 출연한 성혜림(왼쪽)과 김복선. 성혜림은 김정일의 부인이자 김정남의 생모다. <조선영화> 1962년 2월호. 한상언영화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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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영화사를 언급하면서 1980년대 초반 북한에서 활약한 신상옥·최은희 부부도 빼놓을 수 없다.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북한에 신필름을 재건한 이들 부부는 5대 혁명 연극 중 하나인 <혈분만국회>를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탈출기> <소금> <사랑 사랑 내 사랑> <심청전> <방파제> <불가사리> 등을 연출했으며 여러 편의 영화를 지도했다.
■ 변화의 주역, 신상옥·최은희 1986년 3월 북한을 탈출한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짧은 기간 동안 다수의 작품을 창작하여 북한영화계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특히 신상옥이 연출한 <돌아오지 않는 밀사>를 시작으로 1950년대 후반 이후 오랫동안 중지되었던 해외 로케이션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영화제작사와의 합작영화 제작도 재개되었다. 이 중에는 조총련과 손잡고 만든 <은비녀>(1985), <봄날의 눈석이>(1986) 같은 일본 로케이션 영화도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1991년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까지 붕괴하자 북한 정권은 스스로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이를 다짐하는 영화가 1992년 김정일 주도로 총 100부작으로 기획된 <민족과 운명> 시리즈다. 이 시리즈 영화는 윤이상이나 이인모처럼 통일운동에 헌신한 인물들과 사회주의 체제의 뛰어난 공헌자들을 모델로 했다. 하지만 김일성 사후 북한 경제의 어려움과 김정일 사망으로 중단된 뒤 재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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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민족과 운명>이 실린 <조선영화> 1993년 6월호. 한상언영화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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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 사후 정체기 이어져
TV용 상영물은 유튜브로 시청 가능
■ 유튜브로 감상 가능한 최근 영상물 영화 분야를 통해 권력을 쟁취한 김정일이 2011년 사망하자 북한영화는 활기를 잃었다. 북한에서 영화는 더는 당보의 사설과 같이 핵심적이고 중요한 선전 매체로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 현재 북한에서는 흑백필름을 컬러로 전환하는 작업이나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의 획득과 같은 기술적 부분에 집중하고 있으며 극장 상영용 영화보다는 텔레비전 방영용 영화 같은, 대중이 좀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물이 주로 제작되고 있다. 이들 북한 영상물은 유튜브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지난 분단의 시간 동안 남한에서 일반인이 북한영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감시와 처벌을 통해 접근을 차단당했던 북한영화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낯선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한국영화 탄생 100년을 맞이하여 북한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또다른 반쪽의 영화사를 기록하여 제대로 된 민족의 영화사를 서술하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냉전의 시대를 넘어 화합의 시대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한상언 영화사 연구자/한상언영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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