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09 08:26
수정 : 2019.09.17 15:20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58)송환
감독 김동원(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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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은 역사의 칼날 위에 선 비전향 장기수들의 치열한 내면세계를 표현하면서도 그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담아 감동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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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달동네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주하던 김동원 감독은 1992년 비전향 장기수와 처음으로 대면한다. 이후 문민정부 출범으로 남북관계가 유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양심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석방이 가속화된다. 우리 사회는 이른바 ‘간첩’이라 불리던 이들과 살아가게 되는데,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이 정착을 돕는다. 평범한 노인의 겉모습을 한 양심수들이 모진 고문과 기약 없는 막막함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호기심과 낯섦으로 시작한 카메라는 12년이라는 장대한 세월 동안 인물들과의 구체적인 만남을 지속하며 켜켜이 관계를 쌓아간다. 어르신 2명을 마을로 모셔 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양심수 63명이 북으로 송환되기까지, 거대한 세계와 맞선 작은 개인들의 미시사가 진솔한 인터뷰와 육성 내레이션 속에서 펼쳐진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숭고한 과정으로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분투하는 치열한 현장의 구술사이다. 감독은 따뜻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이들을 영화적으로 환대한다.
전작 <상계동 올림픽>이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의 정수를 품고 있다면, <송환>은 다큐멘터리 작가의 고민을 담고 있다. 500개의 테이프와 800시간이라는 분량 가운데 완성된 2시간30분의 편집본은 작가적 관찰과 성찰의 결과라 하겠다. 한편 영화는 분단이라는 엄중한 현실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1999년 조성된 송환 분위기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맞게 되는 남북관계의 분기점은 지금 봐도 뜨거운 현대사의 순간이다. 그로부터 역사는 여전히 냉온을 반복하고 있다.
<송환>은 한국영화 최초로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다. 또한 2004년 극장 개봉으로 다수의 관객을 만나며 독립영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낸다. 이것은 독립영화 배급 시스템을 개선하는 계기로 작동해 2000년대 후반 독립영화 관객 확장의 밑거름이 됐다.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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