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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8 09:16 수정 : 2019.09.24 11:02

박광수 감독은 ‘노동자 전태일’의 아름다운 영혼을 지식인의 시점에서 펼쳐 보인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영화 후반부 전태일의 분신 장면.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64)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감독 박광수(1995년)

박광수 감독은 ‘노동자 전태일’의 아름다운 영혼을 지식인의 시점에서 펼쳐 보인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영화 후반부 전태일의 분신 장면.

영화는 전태일(홍경인)이 1970년 분신하는 그날 현장의 섬광 같은 이미지로 시작한다. 짧고 서늘하게 그날의 비극을 상기시킨 다음, 그로부터 5년 뒤 전태일의 전기를 쓰는 지식인 운동가 김영수(문성근)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전태일의 전기적 삶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 김영수의 눈으로 본 전태일의 삶을 추적하고, 여전히 암흑 속에 있었던 1970년대의 노동계 현실을 화면에 끌어들인다. 노동운동을 하는 정순(김선재)과 함께 살며 공안당국으로부터 수배당해 숨어 지내는 김영수는 노조 결성에 앞장섰다가 고난을 겪는 정순을 실질적으로 돕지 못한다. 김영수는 오직 전태일의 삶을 기록할 수 있을 뿐이고 현재의 수많은 전태일의 삶 주변에서 그들을 지켜볼 따름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 <그 섬에 가고 싶다> 등 전작에서 이미 지식인의 시점으로 플롯을 지탱하는 형식을 고수한 박광수 감독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그 화법의 정점을 드러낸다. 1975년 현재는 색채로, 과거는 흑백으로 재현한 화면은 곧잘 교차하면서, 현재와 과거를 잇는 비극적 현실을 냉정하게 지켜보는 최적의 거리감을 화면에 부여한다. 그 화면들에서 전태일의 격한 노동과 고통의 증언, 노동자 친구들의 선한 우정의 짧은 시간은 선명하게 관객의 뇌리에 박힌다.

김영수가 전태일 평전을 쓰기 위해 헤매었던 고난에 찬 탐색 속에서 영화는 전태일의 삶을 요약하는 몇몇 인상적인 이미지를 찾아낸다. 막노동 현장에서 일하던 전태일이 비 오는 공사 현장에 팬 관 모양 웅덩이에 누워서 다시 청계천 피복 공장으로 돌아가려고 다짐할 때 그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순교자로 보인다. 전태일이 분신하는 참혹한 장면은 초반에 섬광처럼 제시됐던 이미지를 불꽃으로 확장해 마침내 타오르게 한다. 박광수 감독은 노동자 전태일과 지식인 김영수의 삶을 병렬시키며 서로 처지가 달랐던 그들의 입장을 충돌시킨 끝에 결국 만나게 한다. ‘전태일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섣불리 나대지 않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정직한 영화적 출구였다.

김영진/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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