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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9 08:39 수정 : 2019.10.29 09:04

열혈 시네필이었던 류승완 감독은 독학으로 영화를 배웠고, 제도 바깥에 있었다. 그는 세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으로 이뤄진 극단적 액션 옴니버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일약 밀레니엄을 여는 새로운 세대의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81)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감독 류승완(2000년)

열혈 시네필이었던 류승완 감독은 독학으로 영화를 배웠고, 제도 바깥에 있었다. 그는 세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으로 이뤄진 극단적 액션 옴니버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일약 밀레니엄을 여는 새로운 세대의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영화에 미친 사람들, 한국영화사에서 지난 세기에는 그들을 영화광이라고 불렀다. 우리 세기에는 시네필이라고 부른다. 둘 사이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영화광들은 열정적이었지만 구경꾼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시네필들은 자기 손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가 한국영화에 차례로 도착했다.

류승완은 고상한 문화원 세대가 아니었다. 주말의 명화를 보기는 했지만 그를 매혹시키지 못했다. 비디오로 카피해서 돌려 보던 제3세계 영화들은 그를 흥분시키지 않았다. 류승완이 홀린 것은 활동사진의 쾌감을 안겨주는 액션, 액션, 액션의 장면들이었다. 버스터 키턴과 성룡(청룽)의 영화 사이에 놓인 어떤 차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영화들을 반복해서 보고, 그런 다음 장면들을 복기하고, 그리고 그걸 찍어보고 싶어졌다. 류승완은 영화를 독학으로 배운 사람이다. 스스로를 ‘표절의 왕’이라고 부른 그는 제도 바깥에 있었고, 문법을 배우지 않았으며,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네 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다. 세 편의 단편, <패싸움> <악몽> 그리고 <현대인>, 한 편의 중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 영화가 기이한 것은 영화 안에서 네 편의 영화가 차례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패싸움>은 동아리 습작 단편영화의 수준으로 만들어졌다. <악몽>은 어처구니없는 호러영화 컨벤션을 액션영화와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렸다. 다만 한가지는 알겠다. 이 사람은 지금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이 신나는 것이다. <현대인>은 갑자기 훌륭해졌다. 잠복하던 형사와 건달이 만나서 다짜고짜 싸움을 벌이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 싸움은 정말 육체가 소진되도록 이어진다. 그 육체의 충돌이 너무나 진지해서 액션 장면이라기보다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정도로 피로해진다. 그런 다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오로지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진정한 감독으로 도약시켰다. 이 네 편의 영화는 ‘열혈’ 시네필의 청춘에 관한 맹렬한 기록이며, 스스로의 성장에 관한 환희에 찬 인정투쟁이다. 그해에 21세기가 도착했다.

정성일/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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