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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8 07:16 수정 : 2019.11.28 09:19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지리산에 남아 있는 빨치산을 다룬 영화 <피아골>에선 한때 혁명을 꿈꾸었지만 이젠 버려진 자들이 주인공이며, 우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지옥 같은 전쟁이 남긴 처참함과 피로감을 경험하게 된다. <피아골>은 점점 내면이 붕괴되는 인간 군상의 폐소공포증적인 심리를 밀도 높게 그린 드라마이며, 전쟁 영화의 형식을 빌려 궁극적으로는 전후 한국 사회의 풍경을 드러내는 걸작이다.

[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96)<피아골>
감독 이강천(1955)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지리산에 남아 있는 빨치산을 다룬 영화 <피아골>에선 한때 혁명을 꿈꾸었지만 이젠 버려진 자들이 주인공이며, 우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지옥 같은 전쟁이 남긴 처참함과 피로감을 경험하게 된다. <피아골>은 점점 내면이 붕괴되는 인간 군상의 폐소공포증적인 심리를 밀도 높게 그린 드라마이며, 전쟁 영화의 형식을 빌려 궁극적으로는 전후 한국 사회의 풍경을 드러내는 걸작이다.

휴전 협정을 맺은 지 불과 2년이 되었을 때 나온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은 이른바 ‘반공 영화’의 범주 안에 있으면서 1955년 반공법 위반에 걸려 상영이 금지되었던, 당시 남한 사회가 지닌 이념적 경직성의 희생양이었던 영화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일면 온당해 보이기도 한다. <피아골>은 아군과 적군을 명확히 나누며 승리를 향해 돌진하는, 전쟁 영화의 일반적인 장르적 쾌감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이미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지리산에 남아 있는 빨치산을 다룬 이 영화엔 호쾌한 액션도, 인민군을 무찌르는 국군의 용맹함도 없다. <피아골>에선 한때 혁명을 꿈꾸었지만 이젠 버려진 자들이 주인공이며, 우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지옥 같은 전쟁이 남긴 처참함과 피로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가 용공 논쟁에 휩싸였던 건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그린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이러한 당국의 견해는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는 북한군을 소탕 대상이 아닌, 휴머니티를 지닌 ‘인간’으로 보여준다. 대장인 아가리(이예춘)의 광기, 인텔리 출신인 철수(김진규)의 고뇌, 애란(노경희)의 회의와 만수(허장강)의 범죄…. <피아골>은 전쟁의 명분이 사라진 1953년의 피아골에 서식하는 일군의 빨치산을 통해, 단순히 전쟁 영화의 테마에 천착해 스펙터클을 전시하지 않고,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욕망과 갈등과 죄의식과 권력관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피아골>은 점점 내면이 붕괴되는 인간 군상의 폐소공포증적인 심리를 밀도 높게 그린 드라마이며, 전쟁 영화의 형식을 빌려 궁극적으로는 전후 한국 사회의 풍경을 드러내는 걸작이다.

철수에게 “빨치산이 사색에 빠진다는 건 위험한 일 아니에요?”라고 묻던 애란은 결국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피아골에서 내려오고, 정처 없이 걷는 모습 위에 태극기 이미지가 겹쳐진다. 그는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기는 걸까? 하지만 이 엔딩은 재상영 허가를 받기 위해 수정한 장면이며, 이렇게 <피아골>은 당시 ‘안전한’ 영화가 되어 대중과 만날 수 있었다.

김형석/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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