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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1 09:00 수정 : 2019.04.19 09:53

[책과 생각]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2018 베스트셀러 결산

우리나라 독자들은 ‘베스트셀러=베스트북’ 등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인다. 성인 10명 가운데 4명이 1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 심각한 독서 위기의 시대에 그나마 읽는 책들도 베스트셀러 위주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사를 쫓으며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욕구, 요즘 말로 ‘인싸’로 살아가고 싶은 심리가 이러한 독서 패턴을 만들어낸다. 베스트셀러를 향한 편애와 쏠림 현상은 점점 더 굳어졌고,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만든다’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독일 사회학자 하이케 라이트슈는 올해 10월 독일에서 출간된 <나 우선주의>(Ich Zuerst)라는 책을 통해 ‘에고의 덫’에 빠져 허우적대는 현대 소비사회를 비판했다. 신자유주의, 경쟁지상주의, 디지털 만능주의가 공동체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개인들이 ‘나만의, 나만에 의한, 나만을 위한’ 생각과 행동에 몰두하면서 ‘우리’가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나 우선주의’에 빠져 나에게만 관심을 갖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추구하겠다는 사람들이 남들이 읽는 책들을 따라 읽으며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2018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였다. 출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올해 출판계 주인공이 ‘곰돌이 푸’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고, 곰돌이 푸가 전해주는 위로와 공감의 말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곰돌이 푸가 전해준 메시지도 사실상 ‘나 우선주의’였다. “남을 위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보세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세요” “나의 길은 나만이 정할 수 있어요” “타인의 행복을 흉내 내지 마세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이 최선의 길이에요.” 부담 없는 분량에 편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단순한 문장들이 치열하고 각박한 현실에 힘겨워하는 독자들을 토닥토닥 쓰담쓰담 어루만져주었다. 이밖에도 <모든 순간이 너였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언어의 온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 더는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보라는 주문을 담은 책들이 2018년 베스트셀러를 점령했다.

제목만으로도 기성세대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들도 많았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당신에게 눈치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 <게을러도 괜찮아> <오늘은 내 마음이 먼저입니다> <이제부터 민폐 좀 끼치고 살겠습니다> 등은 부당한 세상을 향한 뾰족한 가시가 드러나 있는 책들이었다.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연령대가 2~3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취존주의’ 혹은 ‘싫존주의’ 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이 출판 시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2018년 베스트셀러를 결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신인 작가와 중소 출판사의 약진’이다. 김수현, 백세희, 이기주, 정문정 등은 기자 혹은 편집자 출신으로 항상 글을 만지던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모두 첫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름을 올렸다. ‘마음의 숲’ ‘흔’ ‘말글터’ ‘가나출판’ 등, 이들의 책을 출판한 출판사들은 중소형 출판사들로 대형 출판사들의 허를 찌르며 출판 시장의 판을 뒤흔들었다. 아울러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등용문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의 하태완 작가는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짧고 소소한 글들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고, 소셜미디어에서 그의 글을 접했던 사람들이 무서운 입소문을 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올 한 해 동안 사회 각 분야에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거셌다. 세대 간에, 남녀 간에 서로를 향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 나를 먼저 챙기고 나를 찾겠다는 ‘나 우선주의’가 만들어낸 분열과 갈등을 치유할 새로운 키워드를 고민할 시점이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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