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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29 05:00 수정 : 2019.04.29 09:30

18일 세종특별자치시 저물녘 주거 아파트 모습. 세종/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인구·자원 빨아들이는 세종
10명 중 4명 대전에서 유입
2명은 충남북…쏠림 두드러져
부처 공공기관 등 61곳도 이전

주변 지역과 상생 발전
세종은 정치·행정 중심 도시
주변 인구·상업 유입은 부작용
기능 회복하는 청·국회 이전을

네덜란드 ‘란트스타트’ 모델
행정 중심 암스테르담 주변 도시
로테르담은 항만·헤이그는 정치
세종시 도시 기능 나눠 공존을

18일 세종특별자치시 저물녘 주거 아파트 모습. 세종/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7년 동안 눈부시게 성장해온 세종시가 ‘블랙홀’ 논란에 빠져 있다. 애초 조성 목적인 ‘국가균형발전’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기보다는 되레 주변 도시의 인구와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종시를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으로 안착시키려면 국회와 청와대 등을 이전함으로써 본연의 행정수도 기능을 강화하고, 주변 지역과의 불필요한 경쟁을 줄여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국내인구이동 통계를 보면, 2012년 출범 이후 지난 1월까지 세종시로 순유입(전입-전출)된 인구는 20만5779명으로, 이 가운데 충청권에서 순유입된 인구가 62.5%(12만861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년 동안 세종시로 순유입된 인구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충청권 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종시 건설로 특히 직격탄을 맞은 지역은 대전이다. 같은 기간 대전에서 순유입된 인구는 8만7182명으로 세종시 전체 순유입 인구의 42.4%에 이르렀다. 세종시 순유입 인구 10명 가운데 4명이 대전 사람, 2명이 대전을 뺀 충북·충남 사람이었던 셈이다.

반면 서울(2만1766명), 경기(2만8138명), 인천(4103명) 등 수도권에서 세종으로 순유출된 인구는 5만4007명(26.2%)에 그쳤다. 애초 기대했던 수도권 인구 분산보다 충청권의 ‘세종시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다.

세종시와 맞닿은 대전에서 인구 유출이 뚜렷하게 이어진 이유는 새도시 건설에 따른 쾌적한 주거 환경과 발전 가능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노동 대전세종연구원 기획실장은 “조사를 해보니, 세종시로 이전한 이유에 대해 대전에서 온 주민들은 ‘주택 매입’(29.8%)을, 수도권에서 온 이들은 ‘직장 이전’(36.4%)을 첫손에 꼽았다”며 “대전 등 충청권 주민은 좋은 주거 환경을 좇아 세종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18일 세종특별자치시 모습 전경. 세종/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종시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출범한 것은 2012년 7월이다. 당시 인구는 10만751명이었다. 출범 6년을 앞둔 지난해 5월, 세종시 인구는 3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1월 말을 기준으로 인구는 32만1711명이다. 증가세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인구 평균 나이는 36.7살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세종시가 젊은이에게 살고 싶은 도시 가운데 하나라는 방증이다.

그사이 행정기관도 단계적으로 이전했다. 2012년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등을 시작으로 1단계 이전을 한 뒤, 지난달까지 중앙 행정기관 41곳(직원 1만6308명)이 세종으로 내려갔다. 한국개발연구원 등 국책기관 15곳(직원 3539명), 축산물품질평가원 등 공공기관 5곳(직원 2118명)도 이전했다. 오는 8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직원 987명)가 이전할 예정이다. 정부는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치까지 검토하는 상황이다. 행정도시를 넘어 사실상 행정수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럴수록 세종시의 충청권 흡수 현상엔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심지어 국회 등 실질적 수도 기능의 이전이 없다면 ‘세종시 블랙홀’ 현상은 더 강화될 것이란 예측까지 나왔다. 국회 사무처가 한국행정연구원에 맡겨 2017년 12월 완성된 ‘국회 세종시 분원 설치의 타당성 연구’를 보면, “국회 등 실질적 수도 기능의 이전이 없이 행정 기능의 일부만 이전한 상태에서 2단계 발전(자족기능 중심)이 지속되면 충청권 기업들의 세종시 집중으로 소위 인접 지역에 대한 ‘블랙홀 논란’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현재 진행 중인 개헌을 통한 국회의 완전 이전 논의가 선행된 후, 완전 이전이 불가능할 경우 차선책으로 분원 설치를 고려하자는 다수 전문가·실무자들의 의견이 제기된다”고 강조했다.

18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모습 전경. 세종/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04년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후보지평가위원장을 지낸 권용우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세종시는 정치·행정 기능을 중심으로 계획된 도시이기 때문에 관련 기관이나 관련 산업을 중심으로 가는 게 맞다. 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세종시가 주변 인구나 일반 산업까지 차지하려 한다면 오히려 균형발전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국회나 청와대 2집무실을 세종시로 이전해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주변과의 상생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충청권 지방정부들은 저마다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대전은 원도심 대전역세권에 창업공간 지식산업센터를 건립해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인구 유치 카드도 꺼내들었다. 청년·신혼부부에게 희망주택 3천가구를 공급하고, 신규 국공립 어린이집을 100곳까지 늘릴 방침이다.

연기·공주를 떼준 충남은 지난달 20일 더불어민주당과 한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내포혁신도시 조성을 제안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충남권에 세종시 건설이 결정됐다는 이유로 대전과 충남은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혁신도시 예정지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충북은 ‘세종시 인구 빨대 효과’ 태스크포스를 꾸려 명문고 유치, 야구장·대형병원·생태공원 조성, 오송~청주공항 고속화도로 건설 등 세종과 가까운 오송읍의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우종 충북도 기획관리실장은 “높은 부동산 가치, 좋은 교육·정주·문화 여건 때문에 주변 인구가 세종으로 쏠린다. 세종은 중앙정부가 큰 예산을 투입해 건설하지만, 주변 지역은 한정된 지방 재정으로 대책을 세워야 해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광역도시계획 공간구조 기본 구상. 건설교통부(국토부) 2007년 행정중심복합도시 광역도시계획 보고서
전문가들은 세종시와 충청권이 도시 기능을 분담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06년 7월 건설교통부가 내놓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기본계획’을 보면, 세종시와 주변 주요 도시들이 기능을 분담하고 연계하도록 돼 있다. 세종은 중앙행정과 국제교류, 대전·계룡은 핵심 배후로서 국방·과학, 청주는 공항과 교통 관문, 공주는 남서쪽 관문과 문화 거점, 진천·증평은 강원·내륙 교통과 혁신도시 등이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세종과 충청이 전략적으로 기능을 분담하는 게 필요하다. 세종만 커지고 주변이 위축되면 중장기적으로 모두 어려워진다. 중앙 부처의 산하기관, 협회 등을 주변 지역으로 분산 배치하는 전략적 고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재묵 대전세종연구원장도 “세종은 블랙홀 신도시가 아니라 부족한 도시 기능을 주변 도시에서 충족하는 공존의 도시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시와 주변 광역 지방정부가 인구 등 문제로 서로 다투지 않도록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제안도 나온다.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행정)을 중심으로 로테르담(항만·공항 물류), 헤이그(정치), 위트레흐트(도로·철도) 등이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연계하는 ‘란트스타트’를 구성한 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으로 세종·대전·충남·충북은 2030년 아시안게임 충청권 공동 유치에 나섰다.

양승조 충남지사, 이시종 충북지사, 허태정 대전시장, 이춘희 세종시장 등 충청권 단체장들이 지난달 7일 대전시청에서 2030년 아시안게임 충청권 공동 개최 업무협약을 하고 협약서를 보이고 있다. 충북도 제공
이경기 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세종시만으로는 균형발전을 유도할 수도, 수도권을 이길 수도 없다. 아예 세종을 중심으로 ‘란트스타트’형 충청권 광역도시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도시경영연구실장도 “충청권은 시·도 경계가 엄격한 주소지 중심에서 생활권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해 공생을 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윤주 송인걸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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