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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8 05:00 수정 : 2019.05.28 07:51

지난달 30일 오후 충북 혁신도시 파출소 뒤 주차장에 20여대의 공공기관 출퇴근 버스가 서 있고, 기사들이 청소 등을 하며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버스는 월~금요일 공공기관 직원 천여명을 출퇴근시킨다. 오윤주 기자

[다시 균형발전이다] 2부 혁신도시 현장을 가다
① ‘수도권서 가장 가까운’ 충북·강원

가족동반 이주율 각각 21.9%, 37.5% 그쳐
“교육·의료 등 정주 여건 개선 급선무”
지방세 등 세수 지역분산은 긍정적

지난달 30일 오후 충북 혁신도시 파출소 뒤 주차장에 20여대의 공공기관 출퇴근 버스가 서 있고, 기사들이 청소 등을 하며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버스는 월~금요일 공공기관 직원 천여명을 출퇴근시킨다. 오윤주 기자
적막했던 도시에 대형 버스 10여대가 몰려들었다. 버스 앞 유리창에는 저마다 ‘왕십리’ ‘당산역’ ‘잠실’ ‘남부터미널’ 등 서울행을 알리는 안내판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버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한국광해관리공단 등 주요 공공기관 앞에 줄지어 서자, 청사에선 말쑥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쏟아져 나와 분주하게 버스에 올랐다. 대형 버스 행렬은 30여분 만에 13개 공공기관을 모조리 훑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반곡관설동에 자리한 강원원주혁신도시는 잠시 번잡했던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고요해졌다.

충북 진천군 덕산면과 음성군 맹동면 경계에 들어선 충북혁신도시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펼쳐졌다. 같은 시각, 도시 중심부인 버스터미널 주차장엔 공공기관 직원들의 통근버스 20여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이곳 주차장에서 주변 1㎞ 안팎엔 한국소비자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고용정보원 등 혁신도시 공공기관 10곳이 점점이 자리하고 있다. 버스는 월~금요일 아침 9시 전까지 직원들을 공공기관에 뿌렸다가, 오후 6시께 이들을 다시 태워 서울이나 인근 청주로 귀가시킨다. 통근버스가 다니지 않는 토·일요일은 도시도 휴일을 맞는다.

이들 두 혁신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전국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서울·수도권에서 거리가 가장 가깝다는 점이다. 충북혁신도시와 강원원주혁신도시는 서울 광화문에서 직선거리로 각각 80㎞, 90㎞쯤 떨어져 있다. 찻길 기준으로는 각각 110㎞, 120㎞로 두 곳 모두 광화문에서 차로 1시간 40~5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이들 혁신도시로 직장이 이주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수도권에서 출퇴근하거나 월요일에 내려와 금요일에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기러기’ 생활을 반복한다. 김주회 충북 혁신도시발전추진단 혁신도시정책팀장은 “전국 혁신도시 가운데 수도권과 가장 가까운 거리여서 출퇴근 직원이 많고, 가족 동반 이주율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 도시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전국 혁신도시 10곳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지방이전 공공기관의 지역정착 실태와 향후 보완과제’를 보면, 충북혁신도시의 가족 동반 이주율이 21.9%로 전국 꼴찌였다. 강원혁신도시도 이 비율이 37.5%에 불과해 꼴찌에서 두번째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 평균(48.0%)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반면, 부산이 63.8%로 가족 동반 이주율 1위를 기록했고, 제주와 전북이 각각 63.7%, 60.9%로 뒤를 이었다. 혁신도시 완성 뒤 2년이 다 돼 가지만 충북, 강원 혁신도시로 이전한 기관의 직원들은 대체로 홀로 이주했거나, 수도권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국가 균형발전이란 혁신도시 설립 취지가 이들 도시에선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지역에서 터져나온다. 공공기관 이전이 마무리된 지 2년째가 됐지만, 이들 도시 인구가 2만명 수준에 머무는 등 주말과 밤이 되면 ‘유령도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강원혁신도시 인근에서 2년째 고깃집을 운영 중인 손갑철(49)씨는 “혁신도시가 활성화할 거라는 정부 정책만 믿고 정착해 상가를 지었는데, 2년이 지나도록 임대가 나가지 않아 내가 직접 식당을 하게 됐다. 월세를 내지 않는데도 생활비 벌기도 벅차다”고 푸념했다.

거리를 조금만 둘러봐도 이런 분위기는 감지됐다. 이들 도시 곳곳에서 ‘폐업’ ‘임대’ ‘매매’ 등의 펼침막이 적힌 상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임대’나 ‘분양’ 등을 내건 상가만도 수십곳에 달했다. 큰길을 지나 골목 안으로 조금 들어서 보니,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반값 급매매’ ‘특별 할인 임대’ ‘파격 임대’ ‘첫 입점 시 어마어마한 혜택을 드립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펼침막까지 나부꼈다.

강원원주혁신도시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직원 김두용(32)씨는 “분양 초기엔 상가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없다 보니 장사가 안돼 파격 조건을 내걸어도 찾는 사람이 없다. 혁신도시 일대 상당수 상가가 2층 이상은 거의 비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임택수 충북도 정책기획관(전 국토교통부 혁신도시 상생발전과장)은 “서울 등 수도권과 너무 가까워 직원들이 내려오지 않는 것이 충북, 강원 혁신도시의 약점”이라고 말했다.

혁신도시를 새도시로 조성한 탓에 정주여건 마련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가족 동반 이주율을 높이지 못하는 원인으로 손꼽힌다. 충북혁신도시에서 종합병원을 찾으려면 10㎞ 이상을 달려야 한다. 영화관은 지난달 1곳이 문을 열었다. 5년째 충북혁신도시에 사는 임종옥(40)씨는 “초등학생 남매가 아프면 증평이나 청주까지 가야 한다. 음성·진천 등의 구 읍내보다 계획도시인 혁신도시의 생활환경이 나아 이주했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혁신도시를 기존 도심이 아니라 도시 외곽에 새도시 형태로 지었기 때문에 가속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택수 기획관은 “애초에 청주·원주 등 도심 공동화 지역이나 오송·오창 등 배후도시가 형성된 곳에 혁신도시를 만들었다면 빠르게 안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원혁신도시의 상가 일대 모습. ‘임대’ ‘매매’ 등의 펼침막이 내걸린 상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수혁 기자
이런 이유에서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하루 빨리 혁신도시를 안착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주시의회 문정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결국은 이주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혁신도시 임직원들 입장에선 충청·강원의 주거환경이 수도권에 견줘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지역의 과제”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반론도 있다. 류종현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주율 문제는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장년층은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기러기 생활을 하지만 젊은 층은 상당수 이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주율 문제는 지역사회가 교육·의료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한계에도 혁신도시가 이들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강원과 충북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이 납부한 지방세(2017년 기준)만 각각 410억원, 294억원이다. 박영준 원주시청 예산과 주무관은 “지방세는 자주 재원의 근간으로 시가 시민 복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집중됐던 지방세가 혁신도시를 통해 지역으로 분산됐으니 균형발전 효과도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역 안 균형발전을 견인하는 효과도 내고 있다. 충북 지역의 전체 인구(159만9488명)의 절반이 넘는 52.4%(83만8887명)가 청주에 몰려 있다. 이렇다 보니 ‘청주북도’라 불릴 정도다. 하지만 혁신도시가 자리잡으면서 진천·음성 쪽으로도 인구·산업 등이 분산되고 있다. 이제승 충북혁신도시발전추진단장은 “충북의 중부권에 혁신도시가 자리잡으면서 충북 전역이 고루 발전하는 균형발전의 견인차가 됐다. 새도시가 형성되면서 지역 산업과 인력 공급의 거점도 됐다. 충북에서 가장 젊은 도시여서 발전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오윤주 박수혁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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