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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04 04:59 수정 : 2019.06.04 08:05

나주의 광주전남 혁신도시.

2부 혁신도시 현장을 가다
②가장 규모가 큰 광주전남, 그리고 전북, 제주

광주전남, 한전 중심으로 빠른 발전
이전규모·유입인구·기업 등 선두권
전북, 이주율·생활만족도 비교적 우수
연수기관 많은 제주는 아직 효과 작아

나주의 광주전남 혁신도시.
“균형발전을 위한 혁신도시 건설에 공감했다. 10여년을 준비한 끝에 2016년 3월 서울에서 연관 공기업이 많은 나주의 광주전남 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직원 100여명과 같이 왔고, 한해 파견비로 600여만원을 더 준다. 하지만 이직을 막을 수는 없어 광주전남 지역 출신이 늘어나고 있다. 정주 여건이 불만이지만 도시의 미래를 낙관하는 편이다.”(프로그램 개발 업체 이재현 사장, 60살)

“4년 전 공기업에서 일하는 아빠를 따라 서울에서 이사 왔다. 도시가 여유가 있어서 좋다. 엄마, 아빠랑 함께 살아서 행복하고 학교에 가는 게 즐겁다. 근데 아파트 단지 부근에서 쓰레기 연료를 태운다고 어른들이 걱정이 많다. 공기 오염 때문에 다시 아빠와 헤어져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초등학교 5학년 문정원양, 11살)

■ 광주전남 혁신도시

두 사람의 시선에는 입주 6년째를 맞은 광주전남혁신도시(나주)의 명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3일 이런 엇갈린 시각을 현실과 기대의 격차로 해석했다. 이 전 위원장은 “광주전남 혁신도시는 규모의 경제와 집적의 효과가 나타났지만 정주 여건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져 안타깝다. 품격 있는 도시에 살고 싶다는 주민의 바람을 혁신도시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혁신도시의 발전 1단계는 조성과 건축, 2단계는 정주 여건 정비, 3단계는 산학연 복합단지 완성으로 설명했다. 나주의 경우 이미 1단계를 지나 2단계로 들어갔다고 봤다. 입지 선정 때부터 광주와 전남 혁신도시가 통합해 추진한 ‘약발’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전 공기업도 덩치가 큰 한국전력과 한국농어촌공사 등을 유치했고, 도시를 조성하는 속도도 비교적 빨랐다. 그래서 현재 각종 지표에서 선두 주자다. 광주전남 혁신도시에는 지난해 말까지 공공기관 16곳의 직원 7613명이 이전했고 주민등록 인구는 계획인구 4만9천명의 62.9%인 3만819명으로 늘었다. 산학연 복합단지는 41만㎡ 중 82%인 34만㎡가 분양됐고, 입주기업도 224곳에 이르러 독보적인 1위다.

광주전남 혁신도시의 최대 강점은 성장 방향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지방정부와 입주 공기업들은 이곳을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필적하는 세계 최고의 에너지밸리로 만든다는 밑그림을 공유하고 있다. 에너지밸리를 실현하는 또 하나의 디딤돌이 바로 한전공대다. 한전은 2022년 3월까지 5천억원을 들여 6개 에너지 전공에 교수 100명, 학생 1천명이 공부하는 한전공대를 개교할 예정이다. 전남도와 나주시 등 지방정부도 설립 이후 운영비 26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전남도교육청도 에너지 과학영재학교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공약 사업에 지방정부가 과다한 예산을 투입한다는 의회의 비판이 나오자 김영록 전남지사는 “에너지밸리를 육성하기 위해 투자하는 ‘종잣돈’”이라고 설득했다.

지방정부는 공공기관 2차 이전 때도 에너지 관련 공기업을 집중적으로 유치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윤영주 전남도 혁신도시지원단장은 “1차 이전 이후 기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 공대 설립과 추가 이전으로 에너지밸리 청사진을 구현해 한국 경제를 선도하고 균형발전을 주도하는 본보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광주전남 혁신도시 주민들이 열병합발전의 쓰레기연료 사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광주전남 혁신도시엔 이런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지만, 입주민들은 도시 기반시설과 관련한 도시계획 실패로 한숨을 짓고 있다. 불과 3년 사이에 축산 분뇨 냄새, 흙탕수돗물 공급, 소각장 갈등 등 불편을 잇따라 겪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고체성형연료(SRF) 열병합발전소는 대표적 골칫거리다. 남동욱 대방 2차 입주자회장은 “미리 상수원을 확보하고 악취원을 제거했어야 하는데 준비 소홀로 입주민이 흙탕물과 냄새에 시달려야 했다. 3만명이 사는 새도시에 쓰레기 연료를 태우는 발전소를 세운 건 엄청난 판단착오”라고 일갈했다.

■ 전북 혁신도시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6951명이 거주하고 있다. 지난해 말 가족 동반 이주율은 70.1%로 3위, 정주 여건 만족도는 50.4점으로 4위를 기록해 혁신도시 중 상위권에 들었다. 입주민 이민기(35)씨는 “2016년 2월 대전에서 이사를 왔을 때 식당조차 없었다. 이제 정주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그는 아내의 직장이 전북이라며 정년 때까지 살아야겠다고 정을 붙여가는 중이다. 하지만 주말부부인 다른 직원들은 여전히 교통이나 생활 불편을 호소한다.

입주민이 늘면서 전북 지역과의 상생도 구체화하고 있다. 이전 공공기관들은 지역 관광 활성화와 지역 농산물 구매 등에 적극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농촌진흥청과 국민연금공단 등 6개 공공기관이 지역 숙박업체들과 협약해 주요 행사를 전북에서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주요 행사를 수도권이나 제주 등지에서 연다는 비판을 받은 뒤였다. 또 전북도는 이전 기관별로 지역 산업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이전 기관들이 지역 대학 학생들을 위해 교육 과정을 개설하고 학점을 부여하는 `열린 대학’ 개설도 구상하고 있다. 지역인재한테 이전 기관 관련 산업을 경험하게 하고, 일자리 기회도 제공한다는 취지다.

전북 혁신도시.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복합생활문화센터도 세운다. 30~40대 맞벌이 거주자를 겨냥해 보육시설을 늘리고 체육·문화 공간도 확충하기로 했다. 전북혁신도시 안 온빛중학교 통학로와 엽순공원, 기지제를 연결하는 안전한 자전거도로도 개설할 예정이다. 전북도 한 관계자는 “입주기관 등으로 꾸려진 혁신도시 상생협의회를 통해서 필요한 사항을 듣고 있다. 국공립 유치원이 확정되는 등 생활 여건이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제주 혁신도시

서귀포의 제주 혁신도시엔 9개 이전 기관이 모두 들어왔다. 최근 혁신도시 이전 기관 주변에는 분양형 숙박시설들이 들어서고 있고, 오피스텔 같은 대형 건물 공사도 한창이다. 제주 혁신도시는 뒤로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앞으로 서귀포 바다가 펼쳐져 풍경이 빼어나지만 접근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제주 혁신도시 내 이전 기관의 지역인재 채용 비율은 지난해 말 19.4%로 10개 혁신도시 중 최하위다. 공무원연금공단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수 기능을 가진 기관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무원연금공단은 지난해 43명 가운데 6명을 지역인재로 채용했다. 김정환(37) 연금공단 대리는 “2018년 지역인재 채용률은 13.0%로 보통 수준이었다. 그러나 큰 이전 기관이 없어 인재 채용 수가 적고, 연수 중심 기관들이어서 상주 인구도 적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제주혁신도시 이전 기관 근무자는 721명으로 3천~5천명 사이인 다른 기관보다 턱없이 적다. 김 대리는 “공기업이 이전하면 각종 사업을 통해 수익과 세금을 지역에 환원해야 하는데, 제주에 온 기관들은 이렇다 할 수익 모델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주 혁신도시.
이전 기관 근무자들의 불만은 주로 교육과 교통 문제다. 염태문 연금공단 경영지원실장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원들은 제주로 전학시킬 수 있지만, 중고생들은 옮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이전 기관의 직원은 “다른 지역은 모두 기차나 자동차로 갈 수 있지만 제주도는 다르다. 그래서 고립감이 크다. 얼마 전 동료가 부친상을 당했는데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공항에서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광주 전주 제주/안관옥 박임근 허호준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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