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6 09:41
수정 : 2019.11.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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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블리자드사의 하스스톤 마스터스 대회에서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가 방독면을 쓰고 홍콩 자유를 외치는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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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⑭홍콩의 눈보라 ‘블리즈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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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블리자드사의 하스스톤 마스터스 대회에서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가 방독면을 쓰고 홍콩 자유를 외치는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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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사는 매년 블리즈컨(Blizzcon)이라는 자체 게임 축제를 미국에서 연다. 2019년 블리즈컨은 개최 전부터 엄청난 상황에 놓였다. 시작은 지난 10월7일 열린 블리자드의 주요 게임 중 하나인 ‘하스스톤’의 마스터스 대회였다.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 블리츠청(Blitzchung)은 대회에 출전하면서 아예 방독면을 쓰고 경기에 임했다. 그가 경기에서 이긴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 블리츠청은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이라고 외쳤고, 중계진은 다소 장난스러운 말투로 ‘우리 잘리는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실제로 블리자드는 블리츠청에게 상금 회수 및 출전 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중계진 역시 해고당했다. 관련 영상도 삭제조처 됐다.
하지만 이 장면을 녹화한 유저들에 의해 영상이 공개되었고, 블리자드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논란 속에서 블리자드는 결국 초기의 징계보다 수위가 낮은 징계로 입장을 번복했다. 하지만 행사가 열리는 곳에서 홍콩을 지지하고 블리자드를 비판하는 시위가 예고됐으며, 보이콧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 살얼음판의 한가운데에서 블리즈컨 2019가 11월2일부터 이틀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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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 공식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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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행사는 큰 탈 없이 끝났다. 시위대는 많지 않았으며 충돌도 없었다. 그리고 행사 기간에는 ‘디아블로4’와 ‘오버워치2’의 개발 소식이 발표되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블리자드의 몰락을 준엄하게 선언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새로 공개된 게임 정보 분석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이 모든 사태의 근원에는 경제가 있다. 비록 올해 미국에 1위를 내주긴 했지만, 중국에는 여전히 43조2890억원 규모의 게임시장이 존재한다. 중국 최대의 아이티(IT) 게임 회사인 텐센트는 시가총액 548조원으로 세계 모든 기업 가운데 5위 수준의 규모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게임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만의 레드캔들사가 개발한 게임 ‘환원’(還願)은 게임 안에 시진핑 주석을 곰돌이 푸에 빗대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중국의 온라인상에서 ‘삭제’되었다. 악명 높은 판호(게임 서비스 허가권) 발급을 비롯하여, 자국중심주의적이고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는 검열도 횡행한다. 물론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이 게임만은 아니다. 영화산업이나 스포츠산업에도 구매력을 매개로 한 중국의 힘자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홍콩 사태 이후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중국이 벌이는 홍콩에 대한 고립 전략은, 잔혹한 탄압 못지않게 심각하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문화산업들은 돈과 명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대부분 입을 꾹 닫아버리는 길을 택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홍콩이 이들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라인에서 외쳐진 프리 홍콩이 진지한 것이었다면, 홍콩을 지지하는 게이머들의 시위가 세계적 규모로 나타났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행사를 시작하면서 블리자드 대표 앨런 브랙은 “너무 빠른 의사결정과 너무 느린 소통을 했다”며 ‘모든 것’에 대해 사과했다. 행사장에서는 그에 화답하듯 환호성이 나왔다. 하지만 그 사과는 홍콩한테 한 것도 아니고, 사과를 받은 이들도 홍콩인은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 상황이 주는 위화감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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