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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4 18:26 수정 : 2019.07.24 19:34

그래픽_김지야

Weconomy | 경제의 창

성평등·환경보호·동물복지 등
가치관 맞는 것엔 아낌없는 지르기
어긋나는 것엔 단호한 불매
못보는 영화 표 사는 ‘영혼 보내기’에
미쓰백 등 손익분기점 돌파도

그래픽_김지야
유튜버 김아무개(26)씨는 지난해 말부터 집 근처 영화관을 숱하게 오갔다. <미쓰백>, <스윙키즈>, <걸캅스> 상영관에 잦은걸음을 했다. 모두 여성 감독이 만들거나(<미쓰백>),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거나(<걸캅스>), 여성 캐릭터를 다룬(<스윙키즈>) 작품들이다. 관람이 어려울 땐 ‘영혼’이 대신 관람하게 했다. 지난 5월엔 <걸캅스> 미국 개봉을 맞아 자신이 거주했던 뉴저지주 영화관 좌석도 구매했다. 국경을 넘어 ‘영혼을 보낸’ 것이다.

김씨 같은 이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영화를 보고 또 본다. 주로 관객 수가 적은 심야·조조나 선호도가 떨어지는 자리 표값을 내고 영혼만 보내기도 한다. <미쓰백>에 영혼을 보낸 ㄱ씨는 “주연 배우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투자받기 어려웠다는 감독 인터뷰를 보고 운동에 동참했다”며 “1만원 정도 표값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의미 있다”고 했다. <미쓰백>과 <걸캅스>는 단체 관람, 영혼 보내기 운동 등에 힘입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신념에 따라 소비하는 ‘가치 소비’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즘, 환경 보호, 동물 복지 등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관련 문구를 담은 셔츠나 소품으로 정체성을 과감히 드러낸다. 반면 이에 반하는 기업의 제품에 대해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해시태그 등을 통해 단호하게 불매 운동을 벌인다. 소비자 반응에 따라 장·단기 매출이나 브랜드 이미지가 출렁이는 일부 소비재 기업은 이 운동을 주시하고 있다.

■‘1만원 공석’이라는 작은 공

‘가치 소비’가 가장 활발한 분야는 페미니즘에 따른 소비다. 여성 서사를 담은 작품이나 상품에 대한 호응이 빠르게 나타난다. 교보문고 자료를 보면, 페미니즘 도서 매출이 2013년 8023권에서 지난해 6만9832권으로 8.7배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20대 여성 비중도 29.7%에서 39.0%로 뛰었다. 수동적 여성상의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 디즈니 영화 <알라딘>과 <토이스토리4>의 씨제이(CJ) 씨지브이(CGV) 여성 관람객 비중도 각각 68.0%, 66.3%로, 평균(60%)을 상회한다. 페미니즘 소비는 반복적·연쇄적 구매로 이어져 파급력도 큰 편이다. 직장인 강아무개(29)씨는 2016년 영화 <비밀은 없다>를 극장과 인터넷텔레비전(IPTV), 포털사이트 다운로드 등을 통해 여섯 차례 관람하고 각본집도 구매했다.

이들은 기업의 일방적인 마케팅에 좌우되지 않는다. 성 평등 마케팅을 하는 기업도 고용·처우에서 성 차별적 태도를 보이면 가차 없이 비판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페미니즘을 다룬 굿즈를 판매해왔지만, 지난 3월 고용노동부 발표로 여성 관리자 비중이 작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트위터 등에서 불매 운동이 일었다. 올초 에스피시(SPC)그룹의 배스킨라빈스는 11살 여자아이 광고를 내놨다가 ‘성 상품화’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후 해명 글도 하루 만에 삭제해 빈축을 샀다.

■신념의 ‘레이더망’에 잡혀라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가치 소비의 ‘레이더망’에 잡히기 위해 기민하게 대응한다. 근육질 남성을 모델로 내세워온 스포츠 의류업체 나이키는 올초 진취적이고 강인한 여성을 담은 광고를 내놔 한달 만에 유튜브에서 1천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화장품 업체 러쉬 같은 다국적 기업뿐 아니라 오비맥주와 같은 국내 기업도 지난 6월 퀴어퍼레이드를 응원하는 광고를 제작하고 나섰다.

영화 <걸캅스> 응원 차 미국 뉴저지 영화관 좌석을 구매한 인스타그램 사용자 hyuneeee____.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특히 최근 몇년새 환경 문제가 불거지면서 ‘친환경’은 유통업계 마케팅 핵심 코드가 됐다. 스타벅스 등 커피전문점은 잇달아 종이 빨대를 도입했고, 유통업체는 친환경 포장재를 도입해 배송 쓰레기를 줄인다고 강조한다. 백화점 비수기인 6월은 올해 들어 업사이클링(재활용 자원으로 신제품 제작) 마케팅 대목이 됐다. 5년째 제품 중량을 늘리고 포장을 줄이는 캠페인을 진행 중인 오리온은 ‘질소 과자’의 대표주자에서 ‘가성비·친환경 기업’으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동물 복지나 채식주의를 고려한 제품도 조금씩 등장하는 추세다. 닭고기 업체 하림은 닭의 수면 시간을 보장하고 천연 식물성 사료를 먹여 만든 브랜드를 내놨고, 롯데마트는 이달초 복날 보양식 제품을 판매하면서 채식주의자를 고려해 수박 할인 행사를 병행했다.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나 프랑스 EVE(Expertise Vegane Europe) 등으로부터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비건’ 인증을 받은 국산 화장품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는 가치 소비가 시장 판도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뚜렷해지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다. 지난해 11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9.9%가 ‘가격이 비싸도 동물 복지 인증을 받은 축산물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6년 전 긍정 응답 36.4%에 비해 64%가량 늘어난 수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치 소비는 관련 제품에 구매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아직 큰 수익이 나진 않지만 업계에서는 단골 고객을 쌓고,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했다.

■가까운 것부터, 피부에 와 닿게

가치 소비는 제품 기획과 생산, 판매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촉구하는 윤리적 소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최근의 가치 소비는 개개인의 경험에서 촉발된 측면이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덜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가 주축이 됐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한해의 소비 경향을 짚은 책 <트렌드 코리아 2018>을 통해 이같은 소비 형태를 ‘미닝 아웃(meaning out)’으로 명명한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박사는 “소비자 운동의 초점이 거대 담론보다는 생활밀착형 이슈로 바뀌고 있다”고 짚었다. 최 박사는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만 해도 국내외에서 수년간 언급된 운동이지만, 국내에서는 최근 몇년새 미세먼지나 혹서 등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환경 문제를 생존과 직결된 사안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필환경’(상품 생산과 구매에 있어서 환경 오염을 최소화했는지 여부를 필수적으로 고려) 트렌드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치 소비는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만큼, 확장성과 지속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페미니즘 소비는 단기적 구매·불매 운동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면서 콘텐츠 제작자 등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며 “여성의 관리직 비중 확대 등 기업 내부 구성의 변화까지 유도하면 장기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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