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전 판사 판사 시절, 작은 법원에서 영장심사를 맡았다. 영장법정에 불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아프다. 경제적 약자일수록 그렇다. 검게 팬 눈물고랑, 쉬어 버린 목소리, 주눅 든 움직임. 활력징후의 무기력이 느껴진다. 이들도 그랬을 거다.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의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여성과 다섯살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 추정 사인은 ‘굶주림’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이는 죽기 전 유치원 입학마저 거절당했다 한다. 바로 그 전날엔, 독거하던 30대 여성이 집에서 엎드린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월세가 밀리고 생계도 어려웠다. 싱글이던 그녀의 주검은 부산 빌라에 한 달 넘게 방치돼 있었다. 대구의 쪽방촌에선 50대 남성이 갑자기 숨을 거뒀다. 35도에 이르는 낮 기온, 숨 막히는 열대야 속에서도 냉방기는 꿈도 못 꿨다. 경북 경산에선 또 다른 모자가 세상을 떠났다. 80대 노모와 그녀를 홀로 모시던 50대 아들이다. 유서를 확보한 경찰은 원인으로 생활고를 꼽는다. 급기야 열흘 전엔 일가족 모두가 세상을 등지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도 의왕에 살던 노부부와 두 딸이었다. 이들 넷은 함께 목숨을 끊었다. 유서엔 ‘빚 때문에 힘들다’고 적었다. 이게 모두 2~3주 안에 벌어진 일이다. 다들 몸이 아팠다. 관악구의 아이는 뇌전증을 앓았고, 대구의 남성은 패혈증이었으며, 경산의 노모는 치매였다. 언제부터 아팠을까. 오래전 품었던 의문이었다.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그 실마리가 조금 보인다. 갓난아이가 하나 있다. 어머니가 조산한 뒤 병원에 버리고 갔다.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오래 있을 순 없었다. 임시시설로 옮겨졌으나 예산 지원이 없다. 무국적 유기아동이기 때문이다. 비용 때문에 검진조차 맘껏 할 수가 없다. 큰 병원은 가지도 못한다. 미납 진료비 때문이다. 어떻게 전개될지 눈에 선하다. 얼마 전 <한겨레>의 지하 방 거주 아동에 대한 기사를 봤다. 방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있고, 새끼 쥐가 밥상에 떨어지기도 한다. 아이는 노로바이러스를 얻었다. 자다가 코피를 흘리며 일어나기도 한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의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은 빈혈, 피부병뿐 아니라 우울증과 과잉행동장애에도 시달린다. ‘아동기’의 환경은 ‘성인기’의 건강과 연결된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는 아프리카 사례 하나가 소개되어 있다. 아프리카의 우기엔 설사병과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린다. 이때 태어난 아이들은 성년이 되고 나서 서서히 죽어간다. 남들보다 먼저, 많이 죽는다. 사춘기까지는 별 차이가 없다. 성장기의 활력이 사라질 때, 그때부터 질병은 아이들을 낚아채기 시작한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게 있다. 이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아동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94만명이다. 전체 아동 10명 중 1명이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아파져가고’ 있다. 국회는 이런 와중에 이들을 도발했다. 이달 초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하며 일부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약자의 삶을 지탱할 예산까지 건드렸다. ‘의료급여 경상보조금’은 저소득층 의료서비스에 쓸 돈이다. 이 예산을 정부안에서 763억원이나 깎았다. ‘저소득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비’는 129억원을 깎았다. ‘생계급여’도 55억원, ‘지역아동센터 지원비’도 19억원을 각기 줄였다. 정부 역시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사실 관악구 임대아파트에서 죽은 그녀는 지난겨울에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었다. 공무원은 이혼확인서의 제출을 요구했다. 공약으로 폐지가 약속된 ‘부양의무자 기준’이 그 명분이란다. 하지만 전남편은 중국인이었다. 음식 구할 돈도 없는 그녀가 무슨 수로 중국인들에게 서류를 받아 오냔 말이다. 며칠 전 광화문에서 그녀의 추모식이 열렸다. 서울역 광장과 쪽방촌에서 만난 얼굴도 간간이 보였다. 이들은 부양의무자 기준의 즉시 폐지 등을 요구했다. 나는 이들의 싸움이 오래가지 못할까 걱정이다. 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고 이용마 기자, 그도 같은 주에 세상을 떠났다. 속상하다. 건강하던 그분조차 긴 싸움에 암을 얻었다. 약자들이 버티는 방법은 하나다. 서로에게 연결되는 것이다. 고립은 건강에 안 좋다. 오랜 노숙 끝에 사회활동을 재개한 여성의 이야기를 읽었다. 쪽방촌의 상담소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하니 ‘뇌가 돌아온다’고 표현했다. 국가는 가난한 이들이 스러져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게 시간이 걸린다면 이들의 연결이라도 당장 돕기 바란다.
칼럼 |
[이탄희의 공감(公感)] 또다시 ‘아사’, 스러져가는 사람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전 판사 판사 시절, 작은 법원에서 영장심사를 맡았다. 영장법정에 불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아프다. 경제적 약자일수록 그렇다. 검게 팬 눈물고랑, 쉬어 버린 목소리, 주눅 든 움직임. 활력징후의 무기력이 느껴진다. 이들도 그랬을 거다.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의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여성과 다섯살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 추정 사인은 ‘굶주림’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이는 죽기 전 유치원 입학마저 거절당했다 한다. 바로 그 전날엔, 독거하던 30대 여성이 집에서 엎드린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월세가 밀리고 생계도 어려웠다. 싱글이던 그녀의 주검은 부산 빌라에 한 달 넘게 방치돼 있었다. 대구의 쪽방촌에선 50대 남성이 갑자기 숨을 거뒀다. 35도에 이르는 낮 기온, 숨 막히는 열대야 속에서도 냉방기는 꿈도 못 꿨다. 경북 경산에선 또 다른 모자가 세상을 떠났다. 80대 노모와 그녀를 홀로 모시던 50대 아들이다. 유서를 확보한 경찰은 원인으로 생활고를 꼽는다. 급기야 열흘 전엔 일가족 모두가 세상을 등지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도 의왕에 살던 노부부와 두 딸이었다. 이들 넷은 함께 목숨을 끊었다. 유서엔 ‘빚 때문에 힘들다’고 적었다. 이게 모두 2~3주 안에 벌어진 일이다. 다들 몸이 아팠다. 관악구의 아이는 뇌전증을 앓았고, 대구의 남성은 패혈증이었으며, 경산의 노모는 치매였다. 언제부터 아팠을까. 오래전 품었던 의문이었다.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그 실마리가 조금 보인다. 갓난아이가 하나 있다. 어머니가 조산한 뒤 병원에 버리고 갔다.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오래 있을 순 없었다. 임시시설로 옮겨졌으나 예산 지원이 없다. 무국적 유기아동이기 때문이다. 비용 때문에 검진조차 맘껏 할 수가 없다. 큰 병원은 가지도 못한다. 미납 진료비 때문이다. 어떻게 전개될지 눈에 선하다. 얼마 전 <한겨레>의 지하 방 거주 아동에 대한 기사를 봤다. 방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있고, 새끼 쥐가 밥상에 떨어지기도 한다. 아이는 노로바이러스를 얻었다. 자다가 코피를 흘리며 일어나기도 한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의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은 빈혈, 피부병뿐 아니라 우울증과 과잉행동장애에도 시달린다. ‘아동기’의 환경은 ‘성인기’의 건강과 연결된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는 아프리카 사례 하나가 소개되어 있다. 아프리카의 우기엔 설사병과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린다. 이때 태어난 아이들은 성년이 되고 나서 서서히 죽어간다. 남들보다 먼저, 많이 죽는다. 사춘기까지는 별 차이가 없다. 성장기의 활력이 사라질 때, 그때부터 질병은 아이들을 낚아채기 시작한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게 있다. 이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아동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94만명이다. 전체 아동 10명 중 1명이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아파져가고’ 있다. 국회는 이런 와중에 이들을 도발했다. 이달 초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하며 일부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약자의 삶을 지탱할 예산까지 건드렸다. ‘의료급여 경상보조금’은 저소득층 의료서비스에 쓸 돈이다. 이 예산을 정부안에서 763억원이나 깎았다. ‘저소득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비’는 129억원을 깎았다. ‘생계급여’도 55억원, ‘지역아동센터 지원비’도 19억원을 각기 줄였다. 정부 역시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사실 관악구 임대아파트에서 죽은 그녀는 지난겨울에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었다. 공무원은 이혼확인서의 제출을 요구했다. 공약으로 폐지가 약속된 ‘부양의무자 기준’이 그 명분이란다. 하지만 전남편은 중국인이었다. 음식 구할 돈도 없는 그녀가 무슨 수로 중국인들에게 서류를 받아 오냔 말이다. 며칠 전 광화문에서 그녀의 추모식이 열렸다. 서울역 광장과 쪽방촌에서 만난 얼굴도 간간이 보였다. 이들은 부양의무자 기준의 즉시 폐지 등을 요구했다. 나는 이들의 싸움이 오래가지 못할까 걱정이다. 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고 이용마 기자, 그도 같은 주에 세상을 떠났다. 속상하다. 건강하던 그분조차 긴 싸움에 암을 얻었다. 약자들이 버티는 방법은 하나다. 서로에게 연결되는 것이다. 고립은 건강에 안 좋다. 오랜 노숙 끝에 사회활동을 재개한 여성의 이야기를 읽었다. 쪽방촌의 상담소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하니 ‘뇌가 돌아온다’고 표현했다. 국가는 가난한 이들이 스러져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게 시간이 걸린다면 이들의 연결이라도 당장 돕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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