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청년 퇴사는 시대적 변화를 드러내는 사회 현상이다. 무엇보다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이 1년 5.9개월에 불과하고,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도 27.7%에 이른다는 수치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전자는 2018년 통계청 조사 결과이고, 후자는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의 312개 기업 대상 조사 결과다. 그러다 보니 한국 청년의 퇴사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쪽에서는 취업하지 못해 난리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퇴사하려 애쓰는 아이러니를 빗대 ‘입퇴양난’이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그동안 미디어를 도배했던 퇴사담론은 ‘가슴 뛰는 일을 찾아서’ 또는 ‘소확행’을 추구해 퇴사를 감행하는 ‘밀레니얼 세대’라는 면에 집중했다. 물론 청년들의 인내심과 적응력 부족을 꾸짖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계기와 원인이 무엇이든 퇴사는 청년들의 ‘개인적 선택’으로 간주되었다. 웹툰 <미생>의 대사처럼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인데, 왜 청년들이 기꺼이 지옥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누락되었다. 이 대목에서 진보적 싱크탱크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보고서 ‘퇴사, 일터를 떠나는 청년들’을 눈여겨볼 만하다. 퇴사한 청년 2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인데, 어렵게 취업한 청년들이 퇴사를 선택하게 되는 ‘구조’가 잘 담겨 있다. 보고서에 나타난 청년 퇴사의 경로는 이렇다. 취업에 대한 강박으로 떠밀리듯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취업 준비에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정작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일단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첫발을 내딛지만 이들 앞에 놓인 노동현실은 열악하기 일쑤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등 극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제외하면 대다수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다. 경직되고 비민주적인 조직문화도 이들을 퇴사로 모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직장에서 자신의 성장, 승진 등 비전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퇴사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하게 된다. “퇴사할 때는 창업이나 혁신적인 일을 꿈꾸지만 결국 첫 직장과 비슷한 회사를 다시 선택하면서 퇴사와 재취업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 보고서에 담긴 암울한 현실이다. 이처럼 청년들의 자발적 퇴사 이면에는 퇴사로 몰아가는 구조, 즉 불안정 노동이 있다. 앞의 통계청 조사를 보면, 청년들이 힘들게 들어간 첫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로 과반 이상인 51%가 ‘노동여건 불만족’을 들었고, 14.2%가 ‘개인 가족적 이유’(육아·건강·결혼), 12.4%가 ‘계약기간 만료’ 순서였다. 퇴사한 청년 4명 중 3명은 사실상 비자발적 퇴사로 내몰린 셈이다. 퇴사는 비단 불안정 청년 노동자만이 아니라 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에게도 현실적 선택지가 되고 있다. 왜일까? 이들은 고용과 소득을 얻는 대가로 생활의 여유 등 삶의 안정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죽을힘을 다해’ 들어간 회사에서 계속 버티다가는 ‘죽기 일보 직전’이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크다. 게다가 평생직장 신화가 깨진 시대다. 정규직이라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미래의 불안감이 크다. 그 불안감이 외려 청년을 조기 퇴사로 이끈다. 청년 퇴사 현상은 불안정한 미래를 향한 과감한 도전이 아니라, ‘안정성에 대한 과도한 강박’이 낳은 수세적인 방어인 것이다.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고용률 제고를 위해 취업 등 밀어내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퇴사는 개인적 선택이거나 기껏해야 미스매칭 문제 정도로 간주된 탓에 거대한 사각지대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청년정책을 연구해온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대로 된 진로 교육, 좋은 일터 만들기, 튼실한 사회안전망 등 통합적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해법이 종합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퇴사 현상’ 안에 우리 사회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파른 변화의 시대다. 경제의 양극화와 노동규범의 혼돈 한가운데 청년 노동자들이 서 있다. 욜로든 소확행이든 청년 개인의 선택이라는 프레임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청년 퇴사 현상’의 해법은 역설적으로 ‘자유롭게 퇴사해도 괜찮은 사회’에 있다. 퇴사가 이슈가 되지 못하는 안정된 사회에서만 비로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도 가능하다. hgy4215@hani.co.kr
칼럼 |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청년을 퇴사로 밀어내는 사회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청년 퇴사는 시대적 변화를 드러내는 사회 현상이다. 무엇보다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이 1년 5.9개월에 불과하고,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도 27.7%에 이른다는 수치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전자는 2018년 통계청 조사 결과이고, 후자는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의 312개 기업 대상 조사 결과다. 그러다 보니 한국 청년의 퇴사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쪽에서는 취업하지 못해 난리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퇴사하려 애쓰는 아이러니를 빗대 ‘입퇴양난’이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그동안 미디어를 도배했던 퇴사담론은 ‘가슴 뛰는 일을 찾아서’ 또는 ‘소확행’을 추구해 퇴사를 감행하는 ‘밀레니얼 세대’라는 면에 집중했다. 물론 청년들의 인내심과 적응력 부족을 꾸짖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계기와 원인이 무엇이든 퇴사는 청년들의 ‘개인적 선택’으로 간주되었다. 웹툰 <미생>의 대사처럼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인데, 왜 청년들이 기꺼이 지옥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누락되었다. 이 대목에서 진보적 싱크탱크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보고서 ‘퇴사, 일터를 떠나는 청년들’을 눈여겨볼 만하다. 퇴사한 청년 2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인데, 어렵게 취업한 청년들이 퇴사를 선택하게 되는 ‘구조’가 잘 담겨 있다. 보고서에 나타난 청년 퇴사의 경로는 이렇다. 취업에 대한 강박으로 떠밀리듯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취업 준비에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정작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일단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첫발을 내딛지만 이들 앞에 놓인 노동현실은 열악하기 일쑤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등 극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제외하면 대다수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다. 경직되고 비민주적인 조직문화도 이들을 퇴사로 모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직장에서 자신의 성장, 승진 등 비전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퇴사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하게 된다. “퇴사할 때는 창업이나 혁신적인 일을 꿈꾸지만 결국 첫 직장과 비슷한 회사를 다시 선택하면서 퇴사와 재취업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 보고서에 담긴 암울한 현실이다. 이처럼 청년들의 자발적 퇴사 이면에는 퇴사로 몰아가는 구조, 즉 불안정 노동이 있다. 앞의 통계청 조사를 보면, 청년들이 힘들게 들어간 첫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로 과반 이상인 51%가 ‘노동여건 불만족’을 들었고, 14.2%가 ‘개인 가족적 이유’(육아·건강·결혼), 12.4%가 ‘계약기간 만료’ 순서였다. 퇴사한 청년 4명 중 3명은 사실상 비자발적 퇴사로 내몰린 셈이다. 퇴사는 비단 불안정 청년 노동자만이 아니라 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에게도 현실적 선택지가 되고 있다. 왜일까? 이들은 고용과 소득을 얻는 대가로 생활의 여유 등 삶의 안정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죽을힘을 다해’ 들어간 회사에서 계속 버티다가는 ‘죽기 일보 직전’이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크다. 게다가 평생직장 신화가 깨진 시대다. 정규직이라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미래의 불안감이 크다. 그 불안감이 외려 청년을 조기 퇴사로 이끈다. 청년 퇴사 현상은 불안정한 미래를 향한 과감한 도전이 아니라, ‘안정성에 대한 과도한 강박’이 낳은 수세적인 방어인 것이다.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고용률 제고를 위해 취업 등 밀어내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퇴사는 개인적 선택이거나 기껏해야 미스매칭 문제 정도로 간주된 탓에 거대한 사각지대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청년정책을 연구해온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대로 된 진로 교육, 좋은 일터 만들기, 튼실한 사회안전망 등 통합적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해법이 종합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퇴사 현상’ 안에 우리 사회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파른 변화의 시대다. 경제의 양극화와 노동규범의 혼돈 한가운데 청년 노동자들이 서 있다. 욜로든 소확행이든 청년 개인의 선택이라는 프레임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청년 퇴사 현상’의 해법은 역설적으로 ‘자유롭게 퇴사해도 괜찮은 사회’에 있다. 퇴사가 이슈가 되지 못하는 안정된 사회에서만 비로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도 가능하다.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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