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팀장 5000년쯤 지났다고 치자. 서울은 겉모습이 싹 바뀌었을 것이다. 대한민국도 실질이든 명칭이든 존재를 계속할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때 고고학자들이 북악산 아래를 발굴한다고 또 상상해보자. 경복궁과 청와대 터에서 지표 밑 건물 구조가 발견될 것이다. 운이 좋다면 문자 기록도 발굴할 것이다. 후손들이 조선 말기와 대한민국 초기(국가의 수명을 보통 수백년이라 가정하자)의 차이를 우리만큼 분명하게 인식할까? 그들을 헷갈리게 만들지 모를 요소가 적어도 두가지가 있다. 우선 경복궁과 청와대는 구분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바로 붙어 있고, 건물 형태와 배치가 비슷한 면이 있다. 청와대를 산 밑의 보다 아늑한 곳으로 옮긴 왕궁이라며 헛다리를 짚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황실이나 왕실이 쓰던 봉황 문양이 청와대 터에서도 나올 테니 혼란을 가중할 것이다. 두 건물 주인의 호칭도 고민을 던져줄 것이다. 조선 왕들의 묘호인 조나 종에 견줘 대통령이라는 호칭의 어감은 어떤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최고 우두머리라는 정도의 뜻이니 억조창생의 지배자쯤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그 호칭의 억압적 무게는 왕보다 못하다고 보기 어렵다. 하늘 아래 완전무결하게 새로운 게 없듯이 체제도 그게 극복한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여러 서구 국가가 총리와 내각 중심 체제를 갖추고도 왕의 대체물 같은 대통령을 두거나 전근대적 의전을 흉내내는 것도 그런 풍경이다. 어쨌든 먼 훗날 후손들이 자유, 민주주의, 평등이 훨씬 피어난 세상에서 산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기묘한 느낌을 줄 것이다. 근본주의적 성향의 학자라면 20세기 후반~21세기 초 대한민국을 유사 민주정이나 귀족정이라고 혹평할 수도 있겠다. 위세를 부리는 대통령의 비서 조직을 왕조 때의 환관들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의 광화문 이전 공약을 사실상 접은 게 안타깝다. 약속은 창연했으되 그것을 버리는 설명은 구구했다. 기왕 논의가 있었으니 개헌이든 대선이든 다른 기회가 있을 때 민주공화국 이념에 보다 가까운 형식을 갖추면 좋겠다. 대통령과 청와대 등 위압적이고 모호한 명칭들부터 검토해봐야 한다. 대통령은 옛날에 동아시아에서 가끔 군 지휘관을 일컫던 통령에 크다는 뜻의 접두사를 붙인 말이라는 게 유력한 설이다. 장제스가 대만에 정착시킨 ‘총통’, 북한의 ‘수령’과 느낌이 반드시 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서구에서 황제를 뜻한 엠퍼러도 고대 로마의 유력 군사 지도자를 뜻하는 임페라토르가 어원이다. 모두 ‘국가의 제1 공복’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들이다. 대통령이 제 역할을 하면 그만인데 쓸데없는 시비를 한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은 내용의 단순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형식은 내용을 끌고 가는 힘이기도 하다. 정치를 하면 무엇부터 하겠냐는 질문에 공자가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정명)고 한 것에도 이런 맥락이 있다. 당장 떠오르기로는 대한민국 국무위원장 정도가 있다. 국무회의를 이끄는 사람이니 제격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선점했으니 낭패다. 그래도 고민하면 이상적 칭호가 있을 것이다. 올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만큼 이름을 타락시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정명 얘기가 나왔으니,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너무 타락시킨 전직 영부인에게 조언해줄 게 있다. 당신은 체제의 형식과 내용이 너무 어긋나는 혼탁한 시대를 거치면서 착란의 영역에 들어선 것 같다. 백로 무리에 끼었어도 까마귀는 까마귀다. 당신의 신념을 정당화해줄 방법이 있긴 하다. 자녀 이름 하나를 전민주주의라고 개명하라. ebon@hani.co.kr
칼럼 |
[코즈모폴리턴] ‘대한민국 국무위원장’은 어떤가 / 이본영 |
국제뉴스팀장 5000년쯤 지났다고 치자. 서울은 겉모습이 싹 바뀌었을 것이다. 대한민국도 실질이든 명칭이든 존재를 계속할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때 고고학자들이 북악산 아래를 발굴한다고 또 상상해보자. 경복궁과 청와대 터에서 지표 밑 건물 구조가 발견될 것이다. 운이 좋다면 문자 기록도 발굴할 것이다. 후손들이 조선 말기와 대한민국 초기(국가의 수명을 보통 수백년이라 가정하자)의 차이를 우리만큼 분명하게 인식할까? 그들을 헷갈리게 만들지 모를 요소가 적어도 두가지가 있다. 우선 경복궁과 청와대는 구분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바로 붙어 있고, 건물 형태와 배치가 비슷한 면이 있다. 청와대를 산 밑의 보다 아늑한 곳으로 옮긴 왕궁이라며 헛다리를 짚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황실이나 왕실이 쓰던 봉황 문양이 청와대 터에서도 나올 테니 혼란을 가중할 것이다. 두 건물 주인의 호칭도 고민을 던져줄 것이다. 조선 왕들의 묘호인 조나 종에 견줘 대통령이라는 호칭의 어감은 어떤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최고 우두머리라는 정도의 뜻이니 억조창생의 지배자쯤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그 호칭의 억압적 무게는 왕보다 못하다고 보기 어렵다. 하늘 아래 완전무결하게 새로운 게 없듯이 체제도 그게 극복한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여러 서구 국가가 총리와 내각 중심 체제를 갖추고도 왕의 대체물 같은 대통령을 두거나 전근대적 의전을 흉내내는 것도 그런 풍경이다. 어쨌든 먼 훗날 후손들이 자유, 민주주의, 평등이 훨씬 피어난 세상에서 산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기묘한 느낌을 줄 것이다. 근본주의적 성향의 학자라면 20세기 후반~21세기 초 대한민국을 유사 민주정이나 귀족정이라고 혹평할 수도 있겠다. 위세를 부리는 대통령의 비서 조직을 왕조 때의 환관들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의 광화문 이전 공약을 사실상 접은 게 안타깝다. 약속은 창연했으되 그것을 버리는 설명은 구구했다. 기왕 논의가 있었으니 개헌이든 대선이든 다른 기회가 있을 때 민주공화국 이념에 보다 가까운 형식을 갖추면 좋겠다. 대통령과 청와대 등 위압적이고 모호한 명칭들부터 검토해봐야 한다. 대통령은 옛날에 동아시아에서 가끔 군 지휘관을 일컫던 통령에 크다는 뜻의 접두사를 붙인 말이라는 게 유력한 설이다. 장제스가 대만에 정착시킨 ‘총통’, 북한의 ‘수령’과 느낌이 반드시 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서구에서 황제를 뜻한 엠퍼러도 고대 로마의 유력 군사 지도자를 뜻하는 임페라토르가 어원이다. 모두 ‘국가의 제1 공복’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들이다. 대통령이 제 역할을 하면 그만인데 쓸데없는 시비를 한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은 내용의 단순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형식은 내용을 끌고 가는 힘이기도 하다. 정치를 하면 무엇부터 하겠냐는 질문에 공자가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정명)고 한 것에도 이런 맥락이 있다. 당장 떠오르기로는 대한민국 국무위원장 정도가 있다. 국무회의를 이끄는 사람이니 제격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선점했으니 낭패다. 그래도 고민하면 이상적 칭호가 있을 것이다. 올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만큼 이름을 타락시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정명 얘기가 나왔으니,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너무 타락시킨 전직 영부인에게 조언해줄 게 있다. 당신은 체제의 형식과 내용이 너무 어긋나는 혼탁한 시대를 거치면서 착란의 영역에 들어선 것 같다. 백로 무리에 끼었어도 까마귀는 까마귀다. 당신의 신념을 정당화해줄 방법이 있긴 하다. 자녀 이름 하나를 전민주주의라고 개명하라.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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