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1.22 19:55 수정 : 2019.12.09 14:42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등 조정 소위원회’의 회의가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김재원 예결위원장(등 보인 이) 주재로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등 조정 소위원회’의 회의가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김재원 예결위원장(등 보인 이) 주재로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얼마 전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한 곳인 무디스가 한국 주요 기업의 신용 등급을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경기 부진과 미-중 무역갈등 여파로 이익 창출 여력은 주는 데 반해 빚 부담은 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내외 여건 등을 떠올리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상대적으로 이 발표에서 조명받지 못한 내용은 정부 재정에 대한 평가였다. 무디스는 전반적으로 재정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는 진단을 내놨다.

한국 재정에 대한 무디스의 호의적 평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호의적 평가의 배경엔 몇해 전 무디스의 분석·평가 기준 변경이 있다. 무디스는 조세·기금 수입과 예산의 변화나 국가채무, 재정수지의 수준과 변화 속도에 무게를 두던 종래의 방식에다 ‘현 수준의 채무 비율과 국가 파산 단계의 채무 비율의 격차’를 중심으로 측정한 ‘재정 여력’을 함께 국가 신용 평가 모델에 반영하고 있다. 새로 반영된 재정여력 평가 방법론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2010년)에 기반했다. 그 덕택에 2015년 말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역대 최고 수준인 ‘Aa2’에 올랐다.

무디스의 평가 모델 변화와 기금의 연구 배경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주요 선진국의 채무비율 급증 현상과 그에 맞서 채무 감축(혹은 지출 축소)에 나서려는 각국 정부의 움직임이 있다. ‘채무가 늘어나면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건 상식처럼 다가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이들의 연구 결과이며 판단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은 이 고민을 좀 더 발전시켜 2015년께 또 다른 보고서를 내놓는다. 핵심은 성장과 투자를 희생물로 삼은 채무 감축 노력은 도리어 재정 안정성을 해칠 수 있으며, 각 정부는 성장과 재정의 상관관계를 따져서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무(혹은 적자)를 늘리더라도 이자 비용보다 성장 제고 효과가 더 높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취지다. 단순히 ‘채무비율’이나 ‘적자비율’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완전무결한 주장은 아니지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저성장·저금리 장기화와 통화정책 여력 소진이란 환경에서 공감대를 얻었다.

한국 정부가 재정을 마음껏 헐어 써도 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무디스와 국제통화기금의 고민을 한국이 이제는 곱씹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여년간 국내에서 벌어진 재정 관련 정부 내 논의와 시민사회 여론, 그에 따른 예산 편성과 세제 개편을 포함한 실제 재정 운용은 국제사회의 이런 움직임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논의는 언제나 조각나 있을 뿐 ‘장기와 단기’, ‘수입과 지출’, ‘재정과 거시 경제’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와 노력은 너무나 부족했다. 문재인 정부가 오랜만에 내년 예산안을 비교적 넉넉하게 편성했지만, 그 역시 이런 종합적 고민 속에서 나온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러다 보니 납세자이며 복지 수혜자인 국민은 신문을 펼칠 때마다 어리둥절하게 된다. 어느날은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한다는 보도에 가슴을 졸이고, 다음날은 ‘(과도한 재정 지출로) 재정 중독이 우려된다’란 취지의 보도를 접한다. 일부에선 재정 지출을 과하게 우려하지만, 정부 예산을 쓰지 않았다면 분기 성장률(전기비·계절조정·실질)이 2015년 이후 네 차례나 마이너스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고용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하면서도 ‘세금으로 노인 일자리를 늘려서 되냐’고 비판하는 주장 역시 앞뒤가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정치공학이 얹어지면 어느새 ‘좌파 예산’처럼 색깔이 입혀지거나 ‘삽질 예산’으로 폄훼되기 십상이다. ‘세금을 아껴 써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지역구 의원 상당수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쪽지예산’을 심의장에 집어넣는다.

지난달 22일 시작된 국회의 2020년도 예산 심의가 이제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국회법이 정한 시한은 다음달 2일이다. 주말을 빼면 실질적인 심의가 가능한 날은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다시 저렴한 논의와 위선적인 행동으로 메워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김경락 산업팀 데스크 sp96@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