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5 05:00
수정 : 2020.01.17 09:49
[한겨레-책읽는사회문화재단 공동기획]
우리 독서 동아리를 소개합니다
③ 서울교통공사 독서동아리 ‘다독회’
서울교통공사 5호선 기관사 9명과 지하철 보안관 1명이 모여 다독회 ‘시즌2’ 모임을 한다. 기관사 경력 25년 고참부터 입사한 지 몇 년 안 된 신입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됐다.
기관사들은 각자 운행 스케줄이 다르다. 쉬는 시간, 식사 시간, 휴일도 다 달라서 독서모임 날짜 정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최대한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날을 정하는데, 회원 열 명이 다 모이는 날이면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다들 기뻐한다. 같이 책 읽고 소감을 나누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시즌2가 있으면 시즌1도 있는 법. 우리 독서 동아리는 단순했지만 무거운 고민에서 출발했다. 한정된 공간에 몸도 생각도 갇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저마다 있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각에 지하철을 운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량이 고장 나면 승객을 전부 승강장에 하차시키고 임시조치할 때도 있다. 회송할 때도 있고,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열차를 세우고 달려가기도 한다. 우리의 생각은 항상 5호선 궤도 위를 맴돌고 있다. 도돌이표를 찍으며 살아가던 우리 사이에서 어느 순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그 신호에 귀 기울였다. 그래서 의견이 맞는 동료들끼리 모여 지난 2014년 독서동아리를 결성했다.
모임에선 주로 고전 인문학을 위주로 책을 선정한다.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 번씩은 펼쳐 본, 세월이 흘러 기억이 희미해진 책들로 정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같은 책들이다. 책을 본 뒤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같은 책을 읽고도 느낀 점들은 모두 달랐고 이야기도 점점 다양해졌다. 2년 간 모임을 이어오다가 각자 사정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다독회’는 해체되었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묻혀들어갔다.
그러던 지난 4월 어느 날, 독서동아리 회원이었던 정훈씨가 제안했다. “다독회 모임을 그만두고, 2년 동안 제대로 읽은 책이 한 권도 없어요.” 김태식씨는 “다독회 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다”고 거들었다. 정석태씨도 의견을 보탰다. “다독회 때 읽은 책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다시 시작하면 좋겠어요.” 해서 우리는 다시 함께 읽기를 시작했다. 4월에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5월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6월에는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고민한다.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가 차츰 넓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나만의 아집과 생각에 갇혀 있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다독회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다.
이숙경 다독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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