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요리사가 어둑한 바닥에 쓰러져 있다. 주변에는 와인이 흥건하다. 잠시 뒤 수사관이 들이닥치고 명품 와인들의 이름이 그들 사이에 떠돈다.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피트. 고급 와인만 있네.” 깨진 병 사이로 흘러나온 와인을 검사한 결과 가짜였다. 뉴욕 최고의 요리사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뉴욕 편 중 하나다. 와인도 양주처럼 가짜가 돈다니.
서울 서교동의 ‘로보’에 들어서는 순간 이 한 편의 드라마가 생각난다. 깊은 지하의 와인창고 같다. 습한 기운이 몸을 감싸안는다. 사방이 회색 시멘트다. 독특한 인테리어는 ‘엑스와이제트팀’의 손을 거쳤다. 이 팀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아니지만 아름아름 실력을 인정받아 홍익대 근처의 멋진 카페를 많이 만들었단다. 더구나 ‘로보’가 입주한 빌딩은 건축가 승효상 씨의 작품이다. ‘아트’하다. 이곳에서 와인 한잔하면 나조차 새침한 예술가가 된다.
출렁이는 와인에 맞게 음악도 수준 높은 향을 낸다. 주인 최동혁(36)은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다. 재즈와 대중적이지 않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주로 튼다. 손님들은 그 생소한 느낌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그 리듬에 따라 와인을 고른다. 신대륙과 구대륙의 것들이 조화를 이뤘는데, 칠레 와인은 꽤 괜찮은 것들만 준비했다. 가격은 2만8천∼10만원대가 고작이다. 싸다. 주머니가 얇지만 감각이 뛰어난 20대와 30대가 찾기에 제격이다. 먹을거리는 치즈와 과일 정도다. 그중 멜론 조각 위에 세라노 햄을 얹은 것과 스페인에서 들여온 살라미 햄이 특이하다. 쫄깃하고 맛있다. 멜론과 햄의 궁합이 좋다.
‘로보’ 중앙은 열 명 정도가 같이 앉아서 즐기기에 맞춤한 공간이다. 5 대 5 미팅도 가능하다. 비록 처음 만났지만 함께 흥겨운 음악에 맞춰 복잡한 시에스아이 퍼즐을 풀어보면 어떨까! 금세 그리셤이 되고 세라가 된다. 전화번호(02)336-0228.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