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감독·작가 네덜란드 영화학교에서 9개월이 지났다. 이곳 석사 과정은 10명 남짓의 예술가들이 모여 그룹을 기반으로 영화를 통해 각자의 예술적 연구를 해나가는 것을 골자로 한다. 총 2년 과정에 주관성, 방법론, 실험, 개념화로 나뉜 네 학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2학기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불과 지난주까지 이 학교에서 중요시하는 ‘예술적 연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1학기에는 암스테르담에서 생활에 적응하며 주관성을 찾느라 헤맸다. 이번 학기에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으려 애썼다.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국에서 글을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왔고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학교 밖에서 여행하며 쌓았던 배움의 경험을 영화로 만들었고 글을 썼어요. 최근에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부모님과 그 아래서 자란 저의 이야기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고요. 이 두 프로젝트 모두 개인적인 이야기에 기반을 둔 것이었는데 이후에는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새로운 접근·방법론을 찾고 싶어 여기 왔어요.” 그러자 지도 교수가 물었다. “오래된 방법론을 버리고 싶다고 하는데 무엇이 오래된 것이고 새로운 것이죠? 오래된 것은 나쁜 건가요?” 교수들은 학기 내내 내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를 짚었고, 왜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하는지 물었다. 무심결에 나는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작업은 그저 나의 경험에 기초한 사소한 것이며 전혀 예술적이 아니고 구시대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그럼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죠? 누가 예술가인가요? 보라씨가 한국 사회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해왔고, 여성이자 농인 부모 아래서 자란 사람의 시각으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예술 아닌가요?” 나는 어떤 주제에 접근할 때 내가 해왔던 방법을 바꾸고 싶고 다르게 표현해보고 싶은데 지난 9개월간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던데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왜 습관을 버리고 뜯어고쳐야 하나요? 관점을 바꿔 자신의 습관을 가지고 방향을 바꿔 접근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자신의 습관과 기존 방법론에는 분명 장점이 있어요. 그걸 취해서 다른 방법론을 만들어볼 수 있는 거죠. 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장점을 버리려고 하죠?” 교수는 내가 해왔던 이전 작업을 잘 들여다보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들이 이미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책으로 출간되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그건 ‘성과물’과 ‘결과물’이 되어 마침표를 찍은 것이었다. 그런데 교수는 예술적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했다. 사실 자신은 나의 결과물보다 과정에 더 흥미롭다고 했다. 나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 그는 나에게 그것이 ‘침묵’일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농인 부모한테서 태어나 침묵의 언어를 배우고 그 사이의 행간을 읽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어왔던 비장애 남성의 언어로 말해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작업해왔고 지속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라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침묵의 언어가 여태껏 기억의 중심에 서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읽어내고 시각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해나갈 예술적 연구일 것이라고 말이다.
칼럼 |
[삶의 창] 결과가 아닌 과정을 돌아보는 / 이길보라 |
독립영화감독·작가 네덜란드 영화학교에서 9개월이 지났다. 이곳 석사 과정은 10명 남짓의 예술가들이 모여 그룹을 기반으로 영화를 통해 각자의 예술적 연구를 해나가는 것을 골자로 한다. 총 2년 과정에 주관성, 방법론, 실험, 개념화로 나뉜 네 학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2학기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불과 지난주까지 이 학교에서 중요시하는 ‘예술적 연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1학기에는 암스테르담에서 생활에 적응하며 주관성을 찾느라 헤맸다. 이번 학기에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으려 애썼다.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국에서 글을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왔고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학교 밖에서 여행하며 쌓았던 배움의 경험을 영화로 만들었고 글을 썼어요. 최근에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부모님과 그 아래서 자란 저의 이야기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고요. 이 두 프로젝트 모두 개인적인 이야기에 기반을 둔 것이었는데 이후에는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새로운 접근·방법론을 찾고 싶어 여기 왔어요.” 그러자 지도 교수가 물었다. “오래된 방법론을 버리고 싶다고 하는데 무엇이 오래된 것이고 새로운 것이죠? 오래된 것은 나쁜 건가요?” 교수들은 학기 내내 내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를 짚었고, 왜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하는지 물었다. 무심결에 나는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작업은 그저 나의 경험에 기초한 사소한 것이며 전혀 예술적이 아니고 구시대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그럼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죠? 누가 예술가인가요? 보라씨가 한국 사회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해왔고, 여성이자 농인 부모 아래서 자란 사람의 시각으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예술 아닌가요?” 나는 어떤 주제에 접근할 때 내가 해왔던 방법을 바꾸고 싶고 다르게 표현해보고 싶은데 지난 9개월간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던데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왜 습관을 버리고 뜯어고쳐야 하나요? 관점을 바꿔 자신의 습관을 가지고 방향을 바꿔 접근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자신의 습관과 기존 방법론에는 분명 장점이 있어요. 그걸 취해서 다른 방법론을 만들어볼 수 있는 거죠. 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장점을 버리려고 하죠?” 교수는 내가 해왔던 이전 작업을 잘 들여다보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들이 이미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책으로 출간되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그건 ‘성과물’과 ‘결과물’이 되어 마침표를 찍은 것이었다. 그런데 교수는 예술적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했다. 사실 자신은 나의 결과물보다 과정에 더 흥미롭다고 했다. 나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 그는 나에게 그것이 ‘침묵’일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농인 부모한테서 태어나 침묵의 언어를 배우고 그 사이의 행간을 읽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어왔던 비장애 남성의 언어로 말해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작업해왔고 지속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라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침묵의 언어가 여태껏 기억의 중심에 서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읽어내고 시각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해나갈 예술적 연구일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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