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가 정말 이 친구는 아프가니스탄에 갔을까? 이삿짐을 싸며 낡은 잡지를 들추는데 명함 하나가 발치에 떨어졌다. 온갖 할 일들이 폭풍처럼 몰아닥칠 때는 그런 법이다. 나는 갑작스레 솟아난 이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내전 상태나 다름없는 짐더미 속에서 노트북을 찾았다. 검색창에 명함 속의 이름과 ‘Afghanistan’을 쳐 넣었다. 10년이 조금 넘었을까? 나는 뉴욕 여행을 준비하며 ‘국제 여행사진가 클럽’ 비슷한 커뮤니티 게시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Seoul’이라는 글자가 섞인 새 게시물이 올라왔다. 처음 한국에 왔다는 외국 사진가였다. 일하러 왔다가 하루 쉬게 되었다고, 누구든 근처에 있으면 만나자는 거였다. 그렇게 혜화 로터리의 카페에서 국제 여행자 번개가 이루어졌다. 트래비스는 호주에서 온 젊은 사진가였다. 우리는 금세 여행 이야기에 빠졌다.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잡지에 세계지도가 있어, 그 위에 낙서를 하며 떠들어댔다. 나는 서울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 도시의 특이한 장소들을 알려줬고, 그는 호주에 있는 식인 악어와 전기가오리에 대해 허풍을 떨었다. 그러다 그에게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다음은 확실하지 않은데, 어쨌든 최종 목적지는 카불이야.” 그는 사진 일로 돈을 벌며 여러 도시를 경유해 문제의 나라로 가고 있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중고 디지털카메라를 모으고 있어. 거기 애들에게 사진을 찍고 언론사에 파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해.” 악수를 한 뒤 돌아오는 내 마음속이 두근거렸다. 얼마나 용감하고 아름다운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새 직업을 만들어준다니. 그러나 미심쩍기도 했다. 나는 여러 여행지에서 거창한 꿈을 떠벌리는 이들을 보아왔다. “아프리카에 학교를 짓기 위해 여행 사진을 팔고 있어.” “난민 기금 마련을 위한 도보여행 중이야.” “나는 코리아 문제에 정말 관심이 많아. 판문점에서 프리허그를 하고 싶어.” 대다수는 백인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환대받으며 이런 구실로 여행 경비를 얻었다. 여행지는 물론 본국에서도 그들을 사회문제로 취급한다는 글을 보기도 했다. 진짜 삶을 살아갈 용기가 없어 여행지를 떠돌며 기생하는 ‘하얀 쓰레기’들이라고. 나의 낡아빠진 노트북이 한 칸짜리 무선 인터넷을 붙잡고 낑낑댔다. 차라리 찾지 말까? 그냥 믿어버리는 거야. 트래비스가 어딘가에서 힘들지만 멋진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그러던 순간 찾아버렸다. 턱수염이 더부룩해진 그의 사진을. 그는 기필코 카불에 갔다. 처음엔 젊은이들에게 사진과 그라피티를 가르쳐주었던 것 같다. 이어 예술가들을 모아 아트 페스티벌과 영화제를 열었다. 록밴드를 만들어 미국의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청년들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랩 콘테스트를 열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널리 알렸다. 나의 의심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이달에는 새 소식을 들었다. 트래비스는 2018년 시드니 영화제에 감독으로 얼굴을 내민다. 데뷔작 <록카불>(RocKabul)은 아프가니스탄의 유일한 메탈밴드인 디스트릭트 언노운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예고편 속의 카불은 상상 이상으로 황폐한 도시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사이로는 무장한 군인들이 가득하고 아이들은 탱크에 매달려 논다. 그러나 지하 공연장의 젊은이들은 내일에 대해 노래하며 머리를 흔든다. 세상의 절반이 냉소하고, 나머지의 절반이 행세만 할 때, 진짜 무언가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칼럼 |
[삶의 창] 정말 그는 카불에 갔을까? / 이명석 |
문화비평가 정말 이 친구는 아프가니스탄에 갔을까? 이삿짐을 싸며 낡은 잡지를 들추는데 명함 하나가 발치에 떨어졌다. 온갖 할 일들이 폭풍처럼 몰아닥칠 때는 그런 법이다. 나는 갑작스레 솟아난 이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내전 상태나 다름없는 짐더미 속에서 노트북을 찾았다. 검색창에 명함 속의 이름과 ‘Afghanistan’을 쳐 넣었다. 10년이 조금 넘었을까? 나는 뉴욕 여행을 준비하며 ‘국제 여행사진가 클럽’ 비슷한 커뮤니티 게시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Seoul’이라는 글자가 섞인 새 게시물이 올라왔다. 처음 한국에 왔다는 외국 사진가였다. 일하러 왔다가 하루 쉬게 되었다고, 누구든 근처에 있으면 만나자는 거였다. 그렇게 혜화 로터리의 카페에서 국제 여행자 번개가 이루어졌다. 트래비스는 호주에서 온 젊은 사진가였다. 우리는 금세 여행 이야기에 빠졌다.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잡지에 세계지도가 있어, 그 위에 낙서를 하며 떠들어댔다. 나는 서울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 도시의 특이한 장소들을 알려줬고, 그는 호주에 있는 식인 악어와 전기가오리에 대해 허풍을 떨었다. 그러다 그에게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다음은 확실하지 않은데, 어쨌든 최종 목적지는 카불이야.” 그는 사진 일로 돈을 벌며 여러 도시를 경유해 문제의 나라로 가고 있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중고 디지털카메라를 모으고 있어. 거기 애들에게 사진을 찍고 언론사에 파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해.” 악수를 한 뒤 돌아오는 내 마음속이 두근거렸다. 얼마나 용감하고 아름다운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새 직업을 만들어준다니. 그러나 미심쩍기도 했다. 나는 여러 여행지에서 거창한 꿈을 떠벌리는 이들을 보아왔다. “아프리카에 학교를 짓기 위해 여행 사진을 팔고 있어.” “난민 기금 마련을 위한 도보여행 중이야.” “나는 코리아 문제에 정말 관심이 많아. 판문점에서 프리허그를 하고 싶어.” 대다수는 백인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환대받으며 이런 구실로 여행 경비를 얻었다. 여행지는 물론 본국에서도 그들을 사회문제로 취급한다는 글을 보기도 했다. 진짜 삶을 살아갈 용기가 없어 여행지를 떠돌며 기생하는 ‘하얀 쓰레기’들이라고. 나의 낡아빠진 노트북이 한 칸짜리 무선 인터넷을 붙잡고 낑낑댔다. 차라리 찾지 말까? 그냥 믿어버리는 거야. 트래비스가 어딘가에서 힘들지만 멋진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그러던 순간 찾아버렸다. 턱수염이 더부룩해진 그의 사진을. 그는 기필코 카불에 갔다. 처음엔 젊은이들에게 사진과 그라피티를 가르쳐주었던 것 같다. 이어 예술가들을 모아 아트 페스티벌과 영화제를 열었다. 록밴드를 만들어 미국의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청년들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랩 콘테스트를 열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널리 알렸다. 나의 의심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이달에는 새 소식을 들었다. 트래비스는 2018년 시드니 영화제에 감독으로 얼굴을 내민다. 데뷔작 <록카불>(RocKabul)은 아프가니스탄의 유일한 메탈밴드인 디스트릭트 언노운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예고편 속의 카불은 상상 이상으로 황폐한 도시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사이로는 무장한 군인들이 가득하고 아이들은 탱크에 매달려 논다. 그러나 지하 공연장의 젊은이들은 내일에 대해 노래하며 머리를 흔든다. 세상의 절반이 냉소하고, 나머지의 절반이 행세만 할 때, 진짜 무언가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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