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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1 18:27 수정 : 2018.12.21 19:18

김종옥
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해마다 12월 즈음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후원행사 겸해서 공연무대를 마련한다. 올해도 지난 12월 초에 ‘함께 소리쳐’라고 이름을 붙인 행사를 기획하면서 내가 속해 있는 단체에도 출연 요청을 해왔다.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중심이 되고 연대 단체들의 합창과 퍼포먼스가 함께하는 짜임이라고 했다. 바탕에 깔아놓은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닌 터라, 우리는 궁리 끝에 늘 보이던 농성 투사의 모습 말고 색다른 모습으로 흥을 돋우는 데 목표를 두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리하여 아홉 명의 엄마투사들이 반짝이 옷을 입고 양념 출연함으로써 깨알더미 같은 재미를 주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무대를 마치고 들으니 웃음과 환호로 우리 ‘시스터즈’의 공연이 펼쳐지는 내내 한 무리의 청년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찬조 공연을 했던 ‘지보이스 앙상블’팀 이야기였다. 우리들의 무대가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생각하며 잠깐 우쭐하면서도 워낙 재미와 즐거움의 반전 무대를 기획했던 터라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뒤풀이에 가서 그 의문이 풀렸다.

초보들의 실패담이 오가는 흥겨운 와중에 눈물을 흘렸다던 청년들이 살짝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멋있었다는 듣기 민망한 칭찬과 함께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러 왔노라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서야 우리는 그들의 눈물의 의미를 알았다. 지레짐작처럼 우리들의 마음이나 아픔에 감정이입이 되어 울었던 게 아니었다. 우리가 무대에 등장할 때 자신의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하면서 들어갔는데, 그 말이 다 자기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랑한다고, 너를 지켜주겠다고, 최고의 아들이어서 최고의 딸이어서 나의 생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모두 마치 자신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주면서 해주는 어미의 말 같았단다. 어떤 친구는 엄마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나서 울고, 어떤 친구는 엄마에게서 간절하게 듣고 싶은 말이라서 울었다고 했다.

우리의 말이 우리 스스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되레 무한 위로를 받았다. 또한 우리는 쉽게 나오는 사랑한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목이 타게 그리운 위로의 말이었다는 것에 울컥했다. 연막과 조명이 요란했던 그 무대 위와 아래 사이에서 오갔던 것이 다름 아닌 깊은 위로였다. 우리는 그들의 어미를 대신해서, 너와 함께 이렇게 가는 이번 생이 행복하다고 말해주었고, 그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대신해서 그 말을 듣고 울어주었다.

마음이 뜻하지 않은 곳에 가닿았다. 그날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어미를 대신해서, 서로의 아들딸을 대신해서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고 어루만지고 끌어안았다.

살다 보면 대신 답을 받을 때도 있다.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으나 다른 이에게 대신 듣고, 어디선가 답을 받고 싶었으나 대신 다른 걸로 받는 수가 있다. 내가 위로받고 싶었던 대상에게 위로를 못 받고 다른 이에게서 위로를 받는 귀한 순간이 있다. 나의 위로를 전하고 싶었으나 입만 달싹이다 끝내 못 전하고, 그가 대신 다른 위로를 받는 걸 볼 때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전하는 위로도 그렇게 나에게 닿지 못한 순간도 많았으리라. 그 반짝이는 찰나들이 많은 시절이었다고 믿는다, 나의 생이.

추신: 눈이 오는 날 태어나고 눈이 오는 날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만인이 보는 일간지에서 호명해드리는 특별한 효도를 하면, 우리 아버지는 위로를 받으실까. 아버지 기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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