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환/경희대 교수·국제법 최승환/경희대 교수·국제법](http://img.hani.co.kr/imgdb/resize/2008/0626/03065491_20080626.jpg)
최승환/경희대 교수·국제법
시론
미국 쇠고기 수입재개 추가협상 결과에 대해 정부 당국과 일부 전문가들은 90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추가협상 타결에도 아직도 많은 국민과 전문가들은 10점 가량의 점수만 부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협상대표의 고진분투 끝에 미국 측에서 마련한 선물인 이른바 ‘트로이의 목마’ 내부에는 ‘침입자’들이 쇠고기 고시가 공포·시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단 쇠고기 고시가 시행되면 침입자들은 국민들의 식탁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국민들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무기한 반송하겠다는 정부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
‘트로이의 목마’ 내부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숨어있는 이 침입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인간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M/M)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미국산 쇠고기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관찰하는 임무까지 부여받은 침입자들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숨어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다양한 얼굴의 침입자들은 첫째, 광우병 위험이 큰 등뼈(티본 스테이크, 포터하우스 등), 내장(곱창·막창·대창 등), 척추, 선진회수육(AMR) 등이다. 30개월 미만의 쇠고기에서 수입이 허용되는 이들 부위는 내장과 사골을 즐겨 먹는 한국민의 식습관을 고려해 볼 때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SRM)로 수입을 금지해야 했다. 내장 가운데서 회장원위부(소장 끝부분)와 편도 부문만 특정 위험물질로 분류하고 있는 국제수역사무국(OIE)과 달리 유럽연합은 내장 전체를 특정 위험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둘째,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율수출 규제인 품질체계평가(QSA) 프로그램을 준수하지 않는 미국 수출업자들에 의해 국내로 잠입하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다.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30개월 미만으로 위장하여 우리나라로 수출할 경우 치아감별법만으로는 연령 확인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 업체들이 품질체계평가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아도 제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정부 차원에서 ‘30개월 미만의 살코기’에 한해 수출을 보증하던 수출증명(EV) 제도 아래서도 이미 수백여차에 걸친 위반사례가 발생한 적이 있다는 점, 미국정부의 품질체계평가 점검은 연간 1∼2회에 불과하다는 점 등에서 미국정부의 성의있는 점검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영국 등 쇠고기 수출국들이 한-미 쇠고기 합의를 근거로 자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도 미국과 같은 수준의 수입개방을 요구하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의 최혜국대우 원칙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내장과 등뼈 등을 특정 위험물질로 규정하고 있는 유럽시장에서 유통할 수 없어 전량 폐기하고 있는 영국 등의 쇠고기 수출업자들이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할 사업 기회를 열어 준 셈이다.
촛불시위가 국가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가지 않도록 정부 당국은 인간 광우병의 원인에 대한 과학자들 사이 논란을 충분히 인식하여, 국민 전체를 ‘실험 도구화’하는 위험하고 비민주적인 수입 위생조건의 시행을 중지하고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여야 한다. 자유무역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가치’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은 국민건강을 최우선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 신뢰하고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검역조치를 강화하고 좀더 당당하게 미국과 재협상을 추진하거나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을 약속함으로써 야당의 국회 등원을 유도하고 한-미 쇠고기 합의가 야기한 위기를 현명하게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쇠고기 위기는 대국민 신뢰와 국민적 지지를 다시 회복하고 한-미 우호동맹 관계를 더 굳건히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최승환/경희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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