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27 21:13
수정 : 2008.06.2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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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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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1986년 ‘케이비에스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방송 자체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당시 폭압적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더 컸다. 시청료 거부운동은 오랜 국가독재 아래 파편화한 시민사회를 결집시키면서 이듬해 ‘6월 항쟁’으로 이어져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시민들은 거꾸로 <한국방송>을 수호하자며 촛불을 들고 있다.
보다 오래 전인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 실천선언’으로 유신체제에 도전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광고주들이 이 신문에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많은 시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동아일보에 격려광고를 내면서 용맹한 이들 신문기자들을 성원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는 조각조각 배치된 격려문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1987년 1월 <중앙일보>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처음 보도했다. 비록 2단짜리 짧은 사실보도였지만 당시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던 기사였다. 동아일보는 이 사건을 끝까지 추적해 정부의 거짓해명을 밝혀냄으로써 6월 항쟁의 기폭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시민들이 거꾸로 이들 신문에 광고를 내지 말라며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언론의 사회적 지위는 변한다. 민주화 이전에 한국인의 매체 신뢰도는 방송보다 신문이 높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역전돼 방송 신뢰도가 신문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언론의 힘은 국가 경영이 시민의 견해를 반영해 이뤄지도록 하는 데서 생긴다. 국가가 시민의 의사를 바로 반영하지 못할 때 폭압적 기구로 변질하기 쉽기 때문이다. 독일의 석학 하버마스는 언론을 국회와 함께 ‘공공 영역’이라고 명명하면서 이것이 시민사회와 국가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보았다. 국회는 국가를 견제하여 시민의 뜻이 반영된 국정이 운영되도록 기능한다. 그러나 최근 ‘쇠고기 정국’에서 보듯이 한국의 국회 기능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많다. 언론은 비록 국회처럼 헌법 기관은 아니지만 천부인권에 바탕을 둔 대표적인 공공 영역이다.
그러나 때로 이러한 공공 영역이 시민사회와 국가의 중간지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국가가 편법과 탈법을 통해 언론을 자신의 하부기관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국가 권력을 위임받은 당대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언론마저도 위임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새 정부 들어서서 임기가 보장된 <한국방송> 사장을 끌어내리려 하고, <와이티엔> 사장을 이명박 대통령후보 특보 출신으로 임명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 모두 공영언론을 국민위임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독재 시대의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언론 스스로 권력을 키우고자 시민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떼어 버리고 국가에 편입돼 버리고 마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정부와 입을 맞춘 듯 시민을 훈계하고 자유로운 의사표현마저 제재하자고 주장한다. 이럴 때 시민들이 대안의 공공영역을 찾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정교한 제도로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인터넷 방송 등 비주류 언론과 촛불집회는 공공영역의 위축 상황에서 등장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이명박 정부는 더는 모든 상황을 언론 탓으로 돌리는 지난 노무현 정부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보수언론 또한 이제라도 서둘러 적절한 수준의 공공성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들 언론은 공공 영역으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게 될는지도 모른다.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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