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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04 19:55 수정 : 2008.07.04 19:55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

시론

지난 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언론사 광고주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펼치는 소비자들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방통심의위의 판단은 선진 각국 소비자 운동의 당연한 전제를 이루는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어긋나고, 소비자 운동을 조직적으로 행할 권리를 보장하는 우리 헌법과 소비자 기본법에도 어긋난다.

세계 각국의 기업은 소비자 불매운동을 기업이 대처해야 할 당연한 사업환경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 10여년 사이 중요하게 부각된 불매운동은 품질이나 가격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론사 역시 ‘언론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론사를 상대로는 불매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성립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언론사에 대해서야말로 윤리적 이유로 펼치는 불매운동이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한다. 소비자 불매운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처럼, 각성된 독자의 적극적 의견표명과 실천적 행위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는 언론사 자체에 대한 불매운동은 적법하지만, 언론사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은 위법하다는 궁색한 주장을 개진하고 있다. 그러나 불매운동을 이처럼 자의적으로 구분하고 그 범위를 임의로 제한할 법리적 근거는 없다. 대부분의 불매운동은 해당 기업을 직·간접으로 지원하거나 그 기업과 투자관계가 있는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방통심의위의 이번 결정은 소비자 운동의 합법적 수단인 인터넷포털에 대한 개입과 규제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방통심의위는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 ‘행위’가 위법하다는 그릇된 판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에 동참하도록 권유하는 ‘글’마저 삭제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렇게 ‘행위’와 ‘글’을 동일시하여 억압하기 시작하면 표현의 자유가 숨쉴 공간은 매우 빨리 사라질 것이다.

이용자가 작성하여 게시한 글에 대하여 포털사이트에 책임을 지우는 불행한 현행법 규정은 방통심의위 결정의 폐해를 더욱 부각시킨다. 물론 중국이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도 이용자가 작성한 글에 대한 관리 책임을 포털사이트에 지우고 있다. 이런 입법은 인터넷 기술의 무지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용자가 저작권을 가지는 글을 포털사이트가 마음대로 지워도 무방하다는 다소 후진적인 통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강국이라 자부하며 인권 선진국을 꿈꾸는 우리가 이런 법제를 두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현 시대에는 어느 개인이나 단체도 방송을 장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도 같다. 왜냐하면 방통심의위가 포털사이트 다음에 댓글 삭제를 명하자, 이용자들은 언론사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이제는 구글 사이트를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방통심의위가 미국의 구글사에 글 삭제를 지시할 권한도 없거니와, 미국의 경우 포털사이트가 이용자의 글을 함부로 삭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의 포털사이트는 이용자의 글을 삭제하지 않으면 배상청구를 당하고, 미국에서는 포털사이트가 이용자의 글을 함부로 삭제하면 배상청구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용자의 참여로 형성되는 인터넷 언론에 대한 양국의 견해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국내 포털사이트에 대한 무리한 규제와 정부의 개입은 국내 인터넷 산업의 허약화를 초래할 뿐, 인터넷 언론 장악은 불가능할 것이다.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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