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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17 18:07 수정 : 2018.07.18 12:11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

지난해 우리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신입활동가 채용 공고를 냈는데 딱 1명만 채용할 수 있었다. 고맙게도 지원자는 여럿이었는데 채용되지 않은 지원자 중 유독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있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이었는데 경력자를 찾는 우리 조건 때문이니 실망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었다.

따로 만난 자리에서 그는 ‘여자는 취업하려면 남자보다 100배 더 노력해야 한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대학 입학 직후부터 취업 준비에 매달렸다고 한다. 집에서 독립하길 원해서 취업이 절실했다. 하나은행 입사 지원을 했는데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것을 알고 한동안 밖을 나가기 싫을 만큼 자신감을 잃어 우울증 약을 복용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올해 3월 하나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의 채용 성차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케이비(KB)국민은행은 대졸 신입 공채에서 남성 합격자 비율을 높일 목적으로 점수를 조작했다.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은 남녀를 차등해 4 대 1 비율로 채용하기로 사전에 계획했다. ‘남성이 최대 스펙인 것 같다’며 울분을 터트렸던 여성들은 가장 공정해야 할 채용에 점수 조작이 자행된 것에 충격과 분노를 넘어 절망했다. 60여 단체로 구성된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은행권과 공기업 등에 만연한 채용 성차별 실태에 대해 엄정한 수사와 처벌, 정부와 기업의 근절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국정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했다. 일자리 정부, 일자리 대통령으로 ‘기회의 공정, 정의로운 과정, 결과의 평등’을 국정 철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자리위원회는 직장 내 성희롱, 유리천장, 성별 임금격차 등 노동시장 성차별 문제는 시급하게 다루지 않았다. 똑같이 촛불을 들었지만 여성은 또 배제될 상황이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를 포함한 여성단체는 일자리위원회를 방문해 ‘성평등 고용환경 조성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일자리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여 2018년 1월31일 일자리위원회 여성티에프(TF) 첫 회의가 열렸다. 여성티에프는 공기업과 은행권의 채용 성차별 실태가 속속 드러나면서 채용 성차별 근절 대책 수립에 들어갔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면접에서 최종 선발까지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다. 과정마다 성비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성차별이 의심스러운 곳은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채용 성차별 대책 발표는 계속 늦어졌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 간 인식 차가 크고 합의가 어려웠다. 특히 은행연합회는 공기업도 안 하는 것을 왜 민간기업이 먼저 하느냐며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를 거부했다. 은행권도, 공기업도 ‘성비 공개’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보며 채용 성차별이 얼마나 만연한 문제인지 역으로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일자리위원회 여성티에프와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의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지난 7월5일 대책은 발표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가운 것은 여성 구직자들이 면접과 채용 과정에서 겪은 ‘결(혼)·남(친)·출(산)’ 같은 성차별적 질문이나 정황적 차별에 대해 익명으로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고, 성비 공개에 따라 차별 실태를 드러낼 단초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물론 은행권은 최종 합격 성비만 공개하고 공기업은 면접 단계 성비를 기록·관리만 할 뿐 공개하지 않는 것, 민간기업의 채용 성차별 근절 대책이 부족한 것은 보완돼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엄격한 집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탁상공론일 뿐이다. 정부는 ‘여자’라서 떨어지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강력한 실천 의지를 보이길 바란다. 채용 성차별 근절,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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