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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1 09:07 수정 : 2019.01.22 13:40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적 대화와 같은 국외 제도의 이식이 단지 공식적인 규정과 절차를 마련하는 것으로 쉽게 이루어질 리 없겠다. 급격한 산업화와 왜곡되고 불완전했던 노사관계 법·제도는 주요 사회적 파트너가 최소한도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였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지도부의 참여 결정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내부에는 경사노위가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진정한 투쟁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으니 밑으로부터의 조직화와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노동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여러 사안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이러한 입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사회적 대화의 진전을 위해 당연히 변화되어야 하지만, 경사노위 밖의 환경은 ? 특히 미조직 노동자에게는 - 더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 불참의 사유로 깊이 고려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가 조직화와 투쟁을 자동적으로 포기하는 일이 될 필요도 없다. 경사노위도 또 다른 교섭의 장일 뿐이다.

민주노총은 또한 외환위기하에서의 사회협약 체결 경험에 비추어, 경사노위에서 합의한 내용이 조합원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경우에 대한 우려가 깊을 수 있다. 노사정 대화의 가장 큰 의의는 노와 사 모두 개별적인 이익 추구에 근거한 각자의 전략을 보다 더 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다시 한번 재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부분적인 타협과 양보, 얻을 것과 잃을 것이 발생한다.

그러나 외부 투쟁의 결과가 사회적 대화 참여보다 더 나은 결과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회적 대화 참여를 통해 그동안 이해를 대변할 수 없었던 소수자의 문제에 천착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현재의 이익 실현이 유보된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일터의 균열을 통해 파편화한 연대감을 복원하여 노동운동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리더십은 따라서 사회적 대화에 보다 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비판하는 데 머무는 대신, 노동시장의 최약자를 보호하고 사회 양극화의 거센 폭풍을 되돌릴 수 있는 중요한 의제를 노동운동이 스스로 제안하는 것은 어떠한가? 거기서 더 나아가, 경제의 기본적인 운영방식에 있어 민주적 통제의 원칙을 도입하여 고용과 경제 위기를 노동운동이 주도하여 극복하는 것은 어떠한가?

노사정, 특히 정부는 사회적 대화가 그간 한국 사회에 쌓인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중요한 문제에 대한 엄청나게 어려운 타결만이 사회적 대화가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다. 사회적 파트너가 가진 정보와 지식을 통해 이미 선택된 정책의 분배적 함의에 대한 경고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이해 충돌이나 차이를 사전에 해소하여 빠른 정책 집행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노사가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문제는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추진하지 말고 합의가 안 된 채 그대로 두자. 그 과정에서 노사가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타협과 양보가 가능한 협의의 문화를 착근시킬 가능성이 제고되었다면, 우리의 사회적 대화가 중요한 협약의 체결에 못지않은 성공을 거둔 것이라 관대히 평가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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