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 사는 카타리나 슈미트(52·장신구 디자이너)는 요즘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알츠하이머, 당뇨, 심장병에 홀몸인 아버지를 자신이 간병할 것인가, 아니면 의료시설을 갖춘 노인의 집에 맡길 것인가? 직장생활과 살림을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일과가 빠듯한 그가 직접 간병에 나선다면 여가 희생은 물론, 경제적인 부담까지 짊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5년 동안 노인의 집에서 생활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이 생생한 그가 또다시 아버지를 노인의 집에 맡긴다면, 양심의 가책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슈미트의 고민은 노부모를 모시는 수백만 독일인들의 처지를 대변한다. 인구 고령화, 지급체계 모순 1994년에 도입된 독일 간병보험이 고령인구 급증과 함께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 초 사회복지의 큰 축이었던 영세민 생활보조금과 실업수당 체계를 개편했던 독일에선, ‘이번엔 간병보험이냐’는 자조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연금·실업·건강보험과 더불어 사회보험에 속하는 간병보험은 확대된 건강보험의 일종이다. 소득의 1.7%(사용인과 고용인 반반 부담)에 해당하는 보험료가 원천 징수되는 의무보험이다. 보험 수혜자에겐 진단에 따라 책정된 보험금이 매월 간병인에게 지급된다. 한국에서는 오는 2007년부터 치매·중풍 등으로 거동하기가 불편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간병 등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장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이제 막 당·정협의를 시작한 상태이다. 독일 간병보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령화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탓에 빚어진 엄청난 적자다. 지난해에만 8억2천만유로(1조3322억원)의 적자를 냈다. 2020년쯤에는 80살 이상 고령인구가 현재의 173%로 늘어나 간병수혜자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1996년 150만명이던 간병수혜자는 지난해 200여만명으로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2010년에는 240만명이 된다. 이는 도입 당시 예상보다 15년이나 빠른 추세다.
작년 적자만 1조3300만원 급속한 적자 확대는 간병수혜자 등급체계와 보험금 지급체계의 모순 때문이다. 간병 수혜자는 1~4급으로 구분된다. 각 등급은 간병 방식에 따라 가족 간병, 파출 간병, 의료기관 간병으로 세분화된다. 4급의 경우, 가족간병엔 665유로(84만원)만 지급하고, 간호원의 파출 간병엔 1918유로(240만원), 노인의 집 등 의료기관 간병엔 1688유로(212만원)를 지급한다. 가족 간병에 가장 적게 지급하는 이런 지급체계가 파출 간병이나 의료기관 간병을 부추긴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1996~2004년 가족 간병수혜자는 17% 늘어난 반면, 의료기관과 노인의 집 간병수혜자는 70%나 늘었다. 자립공동체 꾸리기로 이런 불합리한 체계는 당사자인 노인들과 가족들의 결별을 부추기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노인의 집 입주는 당사자인 노인들에게 정든 집은 물론, 자립생활과 이별을 의미한다. 또 집단생활의 일률적 삶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의료인들의 의무적인 간병을 받으며 생을 연명해 가야 하는 인생의 종착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노부모들을 노인의 집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북부 독일 하노버의 정년퇴직자들이 과거 환경박람회 전시물로 이용됐던 근처 건축물에 실버타운을 세워 자립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3~4명의 노인들이 공동생활하는 이 실버타운에선 각자의 사생활을 지키면서도, 취미와 여가를 함께 즐기고 비상시 서로 도울 수 있다. 간병비도 줄일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간병비용을 줄이고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서 간병보험의 개혁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이래저래 간병보험 개혁을 둘러싼 독일 내 논란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보훔/양한주 통신원 yanghanj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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