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3 22:17
수정 : 2006.04.15 21:18
|
7월13일부터 10월3일까지 베를린 구 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야 전시회를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서 있다.
|
피상적 아름다움에 덧칠된 ‘공포’
7월13일부터 10월3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고야 전시회가 평균 두 시간 이상 줄을 서야 입장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베를린에서 130만명의 관객을 모은 뉴욕 현대문화박물관 소장품 순회전의 성공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독일어권에서는 처음 열리는 대규모 고야 전시회로, 베를린 구 국립박물관이 프라도 박물관과 함께 10년 넘도록 행사를 준비했다. 회화 80점, 스케치 60점, 동판화 30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그중에는 처음 대중에 공개되는 개인 소장 작품도 있다. ‘현대의 예언자’라는 부제를 붙여 유럽 현대 예술의 창시자로서의 고야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2시간 줄서 기다려 입장
|
고야의 <변덕 43>
|
전시는 고야가 충실한 궁정화가로서 그린 그림과, 귀족과 교회에 대해 냉소하며 풍자하는 작품들을 나누어 놓고 있다. 이로 인해 그가 생계를 위해 그린 그림과 여가 시간에 개인적으로 그린 그림들의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초기 왕립 태피스트리 제작소 시절에 당시 귀족과 서민의 생활을 그린 쾌활한 느낌의 로코코 풍 벽장식 양탄자와 궁정 수석화가 시절 의뢰 받고 그린, 당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세련된 초상화들은 전시공간 중앙의 홀에 전시되어 있다.
‘현대의 시조’라는 고야의 명성의 뒷받침이 되어주는 <변덕)(1797/99), <방종과 우둔>(1799), <전쟁의 참화>(1810/15) 같은 작은 그림, 동판화 연작들은 주로 홀 주변 작은 복도에 전시되어 있다. 이번 전시회의 큐레이터 모리츠 불렌은 “아름다운 피상적 세계와 그 뒤에 숨겨진 마녀, 악마, 살인, 강간 장면이 있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동시에 보여주려 했다”라고 말했다.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인간”
고야는 귀가 멀기 시작한 1890년대부터 사회와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리기 시작해 정신병원이나 종교재판 모습 등을 화면에 옮겼다. “마녀나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인간이다”라고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던 고야의 이 시기 작품에는 보들레르가 ‘미지의 악몽세계’라고 불렀던 인간의 모순성이 잘 나타난다. 전시회장에 걸린 연작 <변덕43>의 제목 “계몽의 잠(꿈)이 괴물을 낳는다”는 문구가 의미심장하다. 고야는 당시 유행이자 희망이었던 ‘계몽’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미 의심을 품고 있었던 듯하다. 이 소묘에선 책상 위에 잠들어있는 한 남자의 뒤에서 무시무시한 박쥐와 올빼미가 점점 커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베를린 구 국립 박물관장인 페터 클라우스 슈스터는 현대를 두고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했지만, 그로써 점점 더 스스로로부터 소외된다”면서 이런 단면의 예언자로 고야를 지목한다. 큐레이터 불렌은 고야를 ‘할리우드 특별효과의 대가’라고 불렀다. 공포, 폭력, 광기가 전하는 효과를 회화에 담은 화가는 그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베를린/ 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