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남미 |
[토론토통신] ‘가족형 홈리스’ 도시근교로 확산 |
경기 불황과 실업 문제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홈리스 그룹이 등장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길 위로 나앉으면서 만들어지는 이른바 ‘가족형 홈리스’가 그것이다.
이런 홈리스 가족들은 대개 갑자기 길바닥에 나앉게 된 경우들이다. 자기 집이 없이 빠듯한 생활을 꾸려오던 가정이 예기치 못한 실직으로 집세를 내지 못하게 되면 살 곳을 잃게 되는 식이다. 집세와 물가가 비싼 토론토와 같은 대도시의 경우 홈리스의 증가는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추세가 근교 도시들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 근교가 그래도 살기 좋다는 세간의 믿음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일이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토론토 근교의 4개 도시 요크, 더럼, 필, 할톤의 인구는 16% 늘었다. 인구 증가와 함께 주거환경이나 생활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근교 지역의 높아진 생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집을 떠나야 했던 저소득 가계 역시 2.7%나 늘어났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친척이나 친구 집에 얹혀 지내거나 극빈 가족 여러 세대가 한 집에 모여 사는 경우까지 합한다면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 홈리스 가족이 찾아가게 되는 곳은 각 지역에 위치한 쉼터들이다. 필 지역에서만 1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고 이 가운데 어린이가 30%에 육박한다.
올해로 결혼 15년째인 베티와 던은 12살 된 딸과 9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베티가 무릎 관절염이 악화돼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데 이어 슈퍼마켓 물류창고에서 일하던 던까지 직장을 잃었다. 던은 곧 다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지만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다. 집이냐 밥이냐의 선택에서 그들은 집을 포기했고, 이후 베티와 던의 가족은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새로 이사온 곳이 호텔이라고 이야기했다. 쉼터 건물이 낡은 호텔을 인수해 쉼터로 개조한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들처럼 쉼터에 자리를 구한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한정된 시설의 쉼터들은 늘어만가는 홈리스들의 수요를 채울 수 없어 찾아오는 이들을 돌려 보내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베티와 던의 경우 8년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린 뒤 최근 정부 임대아파트에 배정받게 됐다. 한 달 월세는 한국 돈으로 80만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지만, 생활을 꾸리며 집세를 감당할 수 있을지 베티와 던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나 다시금 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행복하기 그지 없다고 말한다.
항시적 실업과 저임금화에 따른 도시 빈곤화가 평범한 가족의 크지 않은 소망을 지켜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토론토/양선영 통신원 sunyoung.yang@utoront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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