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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4 21:43 수정 : 2009.09.14 15:53

류재훈 특파원

워싱턴에서

북한 문제는 도돌이표다. 진전이 있다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교착국면에 처해 있고,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출범과 함께 가졌던 북-미 직접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는 온데간데없다. 또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북-미 간의 마술 같은 직접협상에 대한 기대는 역시 신기루가 됐다.

오바마 정부 출범 직전 대북 적대시 정책의 우선 청산을 요구했던 북한은 국제사회의 설득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거부를 선언한 데 이어 핵시설의 원상복구와 재처리 작업에 착수했고, 오바마 정부 출범 100일을 기념해 또다시 2차 핵실험과 추가 미사일 발사를 예고했다. 오바마 행정부와의 빅딜을 기대하며 말기 부시 행정부와 협상을 포기한 인상을 줬던 북한은 지난 4일 “부시 행정부나 오바마 행정부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남북대화는 물론이고 북-미 대화, 6자회담도 없다는 태도다.

오바마 행정부도 쿠바, 시리아, 이란과는 달리 초강경 일변도인 북한에 대해선 적극적 외교를 한 수 접었다. 최근 북한의 행보가 협상을 위한 태도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북핵문제에 시급성을 갖고 대처하겠다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북한이 모든 옵션을 소진하면 6자회담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태도로 물러섰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엔 로켓 발사 때와 같이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북한에 협상을 구애하거나 북한을 자극하는 압박을 강화하는 대신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 이후 대외 협상보다는 내부 결속을 다지는 북한에 시간을 주겠다는 ‘선의의 무시 정책’이다.

직접외교를 통한 핵문제 해결을 공약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런 와중에서 가닥을 잡기 힘들게 됐다.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동맹국이나 주변 강국들과 정책 조율을 강화해 나간다는 원칙 이외에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북-미 관계가 이처럼 어깃장 나면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와 전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이 문제를 추궁당한 오바마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도 “부시 행정부 마지막 2년과는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정책의 변화 여부는 별로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경우 6자회담 틀 속에서 대화에 나설 자세는 변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의 자체 추동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다년간에 걸친 북-미 협상의 학습효과에서 얻어진 것이다. 갈등과 긴장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바마 행정부 내에 북한에 대한 불신과 냉소의 벽은 더 커질 것이다.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가 양자대화에 나설 부담은 커진다.

비핵화를 유훈으로 남긴 김일성 주석의 출생 100년을 맞아 사회주의 강성대국 달성의 해로 설정한 2012년은 오바마 행정부 첫 임기의 마지막 해와 겹친다. 길지 않은 시간이다. 북한은 아직도 자력갱생을 통한 정치·사상·군사·경제 분야에서의 강성대국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한텐 시간이 별로 없다. 이른 시일 안에 대화에 나서는 것만이 북한 스스로 시간을 버는 길이다. 오바마를 부시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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