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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07 21:34 수정 : 2009.09.14 15:43

유강문 특파원

중국의 전통예술 가운데 ‘변검’(變瞼)이란 게 있다. 쓰촨성에서 번창한 이 공연예술은 베이징의 경극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연희로 꼽힌다. 연기자가 무대에서 자유자재로 얼굴을 바꾸는 것을 보면 경탄이 절로 나온다. 중국 검색포털 바이두의 백과사전을 보면, 연기자의 숙련도에 따라 적게는 세 번, 많게는 아홉 번까지 얼굴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변검의 수법은 크게 세 가지다. 손에 쥐고 있던 물감을 얼굴에 찍어 표정을 바꾸거나, 색가루를 뿌려 낯색을 변화시킨다. 그다음이 유명한 가면 바꿔 쓰기다. 얼굴에 몇 겹의 가면을 쓰고 있다가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벗겨낸다. 연기자는 그럼으로써 공포, 분노, 고뇌, 환희 따위의 내면을 밖으로 투사한다. 얼굴을 바꿔 자신의 심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이 북한을 ‘성난 얼굴’로 노려보고 있다. 핵실험 직후 이를 결연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더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선 공공연히 대북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논의 과정에서 대북 제재의 국제법적 한계를 지적하는 ‘신중한 얼굴’을 보이긴 했지만, 북한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공동의 의지’에선 벗어나지 않았다. 때맞춰 주요 관영매체들은 북한의 도발을 좌시해선 중국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는 논평을 쏟아냈다.

관객들은 중국의 이런 변화에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중국이 드디어 북한에 좌절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며, 이참에 북한과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마침내 북한에서 ‘플러그’를 뽑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중국이 북한이라는 ‘지렛대’를 결코 포기할 리 없다며, 북한을 대하는 근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고 의심한다. 중국이 북한을 향해 잠시 얼굴을 바꿨을 뿐, 얼굴을 돌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은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실험 때도 이번 못잖은 분노를 표시했다. 당시 중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반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핵실험을 했다”고 비난했다. ‘제멋대로’라는 비외교적 용어가 중국의 진노를 표시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중국은 얼마 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중국이 드디어 북한을 향해 채찍을 들었다는 분석이 풍미했다.

그러나 이후 중국은 슬그머니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중국과 북한의 교역은 오히려 늘어났다. 북한의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56.7%에서 2007년 67%, 2008년엔 73%로 늘었다. 중국은 6자회담에서도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는 성실한 중재자로 행세했다. 올해 들어선 베이징에서 북한과의 수교 60돌을 기념하는 ‘우호친선의 해’ 개막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중국에 왕다오정이라는 ‘변검의 달인’이 있다. 그가 가면을 바꾸는 솜씨는 신기에 가깝다. 한 번 얼굴을 바꾸는 데 1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3분30초 동안 연기를 하면서 여덟 번이나 얼굴을 바꾼다. 보통 연기자들이 변검의 절반 정도는 얼굴의 일부를 바꾸는데, 그는 매번 얼굴을 통째로 바꾼다. 그는 변검 사상 최초로 스물네 번이나 얼굴을 바꾸는 독보적인 기술을 창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변검의 달인으로 불리는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변검은 연기자가 준비해둔 가면을 모두 벗어버리고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는 막판에 자신의 진면목을 보인 뒤, 다시 한번 금빛 찬란한 가면을 드러낸다. 그 순간 관객들은 그의 진면목과 가면 사이에서 미로에 빠진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진짜 얼굴이란 말인가?


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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