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06 19:27
수정 : 2011.11.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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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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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우는 일확천금 좇는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다
“과거에 원저우 상인은 어려움을 견디며 일했으나, 이제는 제조업 등 실질적 사업을 버리고 부동산 투기 등 허구의 경제에만 몰두했다. 다들 남편은 공장을 운영하고 부인은 부동산 투기 하는 것을 부의 지름길로 여겼다.”
중국 동남부 항구도시 원저우가 고리대금과 얽힌 ‘중소기업 사장 야반도주’ 사태로 떠들썩하다. 저우더원 원저우중소기업연합회 회장은 지난 30여년간 진행된 원저우 상인들의 ‘타락’에서 그 뿌리를 찾았다.
연일 중국 언론의 주요 뉴스로 등장하고 있는 원저우 민영 중소기업 파산 물결의 직접적 원인은 중국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인한 자금 경색, 부동산 거품 붕괴, 미국·유럽 경제위기로 인한 수출 주문 급감이다. 은행 대출이 막히자 기업가들은 앞다퉈 이자율이 연 100~200%까지 치솟은 고리대금을 빌려 썼다가 이자도 갚지 못하게 되자 기업문을 닫고 도주하거나 자살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원저우에서 야반도주한 기업가가 80명이 넘는다. 4일에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직접 원저우에 찾아가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저장성 최남단의 도시 원저우는 중국 민영 경제를 대표하는 도시다. 전통적으로 인구가 많고 경작할 땅은 적고 척박했던 이곳에서 사람들은 억척스럽게 장사를 하며 ‘원저우 상인’의 명성을 쌓았다. 문화대혁명의 서슬이 살아 있던 1970년대 후반에도 원저우 사람들은 몰래 작업장에서 물건을 만들어다 파는 ‘지하 시장경제’를 키웠다. 1978년 중국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원저우 상인들은 중국 최초의 민영기업을 세우고 온 가족이 매달려 일용품을 만들어 팔아 큰돈을 벌었다. 원저우의 구두, 라이터, 안경 등 제조업은 세계 시장의 강자였다. 200만 인구의 원저우에 36만개의 중소기업이 있고, 외지에 나가 세운 기업도 많다. 덩샤오핑은 “우리는 원저우의 모험가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몇년 새 ‘원저우 모델’은 크게 변했다. 원저우 상인들은 공장은 제쳐두고 국내외 부동산과 광산 등 일확천금을 쥘 수 있는 곳으로 몰렸다. ‘원저우 부동산 투기단’은 전국 주요 도시를 돌아다니며 고급 아파트를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두바이 등 해외 부동산에도 거액을 쏟아부었다. 원저우의 한 기업가는 최근 중국 언론에 “1000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공장을 돌려 얻는 이윤이 1년에 100만위안도 안 되는데, 아내가 상하이에 집 10채를 샀더니 8년 만에 3000만위안 넘게 벌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남는 자금을 고수익을 보장하는 사채업에 앞다퉈 투자해 ‘금융산업’도 키웠다. 원저우 주민의 60~70%는 사채업과 관련돼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쉽게 번 돈이 넘쳐나면서 원저우 사람들은 벤츠나 아우디의 최고급 대형차를 구입하고, 명품 의류와 최고급 프랑스산 포도주를 즐겼다.
중국 정부가 올 들어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과 은행 대출 통제에 나서면서 원저우의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다. 원저우는 빙산의 일각일 뿐, 장쑤·저장·광둥·네이멍구 일대의 민영기업들이 모두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연말과 내년 초 춘절(춘제·설)이 다가오면 도산 급물살이 각지로 확산될 거라는 ‘경착륙’ 예고도 나오고 있다.
원저우는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를 휩쓸었던 일확천금을 좇는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다. 우리가 모두 동경하고 몰려갔던 길이기도 하다. 성장 동력이 떨어진 자본주의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금융과 부동산 거품을 키워 소수가 부를 싹쓸이했고, 금융과 부동산 거품의 팽창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은 커졌다. 원저우의 번영은 중국 경제의 거품과 사회를 위협할 정도로 벌어진 빈부격차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원저우의 몰락은 이제는 더 이상 그 길로는 갈 수 없다는 음울한 경고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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