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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14 18:00 수정 : 2017.12.14 19:29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올해를 돌아보면 한반도 정세가 위기 아니었던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4월 미국 칼빈슨 항모의 한반도 무력시위, 9월 북한의 핵실험, 그리고 지난달 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 발사를 계기로 위기감이 정점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 이후 긴장감은 이전과는 심각성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칼빈슨함의 무력시위 때는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불가능성과 한국 정부의 부재라는 특수한 상황이 겹쳐 증폭된 감이 있다.

9월에는 북한의 첫 수소폭탄 실험이라는 의외성, 북-미 간의 말폭탄 공방이 우발적 충돌 가능성의 우려를 키웠다. 당시 거론되던 ‘군사 옵션’은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하는 ‘톱다운’ 방식이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의 참모들이 ‘선제타격’과 같은 물리적(kinetic) 군사옵션의 위험성을 설득해 트럼프 대통령을 주저앉혔다.

하지만 이번 아이시비엠 발사 이후에는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다른 참모들의 감정도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고 한다. 선제타격 논의도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아이시비엠의 사정거리, 예측하지 못했던 신형 미사일, 북한의 추가 긴장고조 행위 가능성이 정세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이런 우려는 워싱턴의 보수적인 전문가들뿐 아니라,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을 옹호하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다.

아이시비엠 발사는 미국의 ‘9·11 테러’ 트라우마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적어도 ‘심리적’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본토가 공격당했다는 공포감을 갖게 됐다.

한국전쟁 때 미국의 대규모 공습에 따른 평양 초토화가 북한의 안보위협 인식에 각인된 것처럼, ‘9·11 테러’도 미국의 역사적인 집단 트라우마로 깊이 박혀 있다. 북한의 이번 아이시비엠 발사가 지극히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각) 워싱턴의 한 행사에서 “바로 지금이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피할 마지막이자 최고의 기회”라고 한 발언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상황의 심각함은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다른 한쪽의 치열한 ‘사투’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전제조건 없는 대북 대화’ 언급도, 크게 보면 위기를 막기 위한 절박감으로 보인다. 국무부 내에서 대북 협상 로드맵을 짜는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국무부를 중심으로 대화파는 여전히 열세이고 ‘북한은 악의 축’이라는 네오콘적 이데올로기로 기울고 있는 백악관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무역·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중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거의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살얼음판인데,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주한미군 가족 철수론’을 거론하며 기름을 붓는 것은 3선 의원답지 못하다. 게다가 매티스 장관이 “나를 포함해 국방부는 사람들이 그런 언론의 자유를 갖도록 미국을 방어하는 것”이라고 그의 발언을 냉소적으로 평가했는데도, 국내 언론들은 그레이엄 의원의 발언을 며칠째 재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레이엄 의원을 만나면 대북정책이 강경해질 것이라고 보도하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만나면 미국이 중국과 ‘빅딜’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멍청이’(moron)로 보는 거다. 이 엄중한 시기에 너무 가벼운 시각이 아닐까?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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