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물샐틈없는’, ‘빛샐틈없는’ 한-미 동맹이라는 말이 풍미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다. 정부 당국자들은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표현할 수 있는 화려한 형용사를 찾는 데 골몰했다. 그리고 미국 당국자들한테서 그런 형용사가 나올 때마다 한-미 회담의 성과로 포장했다. 공개적으로 표면화된 갈등이 적었다는 의미에선 한-미 동맹은 견고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전략적 인내’라는 한-미의 대북정책 속에서 북핵 문제는 더 악화됐고, 이제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위협으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고 선언했을 때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더 큰 책임을 지울 수도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반성은, 동맹이 원하는 것이면 거의 모두를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한국 정부가 사실상 운전석에 앉았다. 그래서 성 김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2014년 말 방북 시도는 박근혜 정부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를 미국에 사실상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개성공단의 가치를 나름 평가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깜짝 놀랐지만, ‘동맹이 원하니’라며 수용했다. 동맹 간 파열음 방지를 최선의 가치로 여긴 결과는 ‘깜깜이’ 대북정책과 북핵 능력 고도화였다. 최근 북한의 신년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놓고 벌써부터 한국과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동맹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한의 ‘이간질’에 한국 정부가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첫째, 솔직히 이들의 분석에선 지적 게으름이 느껴진다. 북한의 의도는 몇십년째 똑같고, 결국 북한과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정보 아닌가? 북한의 ‘나쁜 의도’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대북 인식의 지평을 한걸음도 넓히지 못할 것이다. 둘째, 한-미 간 균열을 우려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목소리에선 ‘갑질’ 심리가 느껴진다. 미국이 하는 대로 따라오라는, 혹은 따라가라는 안팎의 무언의 압력이다. 균열을 우려한다면서, 실제로는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한 균열의 명분을 찾는 것처럼 비친다. 하다못해 미국 50개주 사이에도 ‘빛샐틈없는’ 공조는 이뤄지지 않는다. 셋째, 북한의 의도가 ‘이간질’이라고 하더라도, 어감이 좋지 않을 뿐 모든 외교에는 어느 정도 이간질이라는 방책이 포함돼 있다. 이른바 ‘분할과 지배’(divide and rule)이다. 일본은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며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하지 않는가?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한-중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가? 북한의 의도가 이간질이라고 정말로 확신한다면, 힘겨루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지 말고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오히려 지금 한-미 간에 가장 큰 잠재적인 갈등 요인이 있다면, 미국 조야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주한미군 철수 위협’이라고 본다. 동맹국인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트럼프 행정부한테 중국의 ‘사드 보복’ 못지않은 완력 행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럼에도, 어렵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최선을 다해 트럼프 행정부와 조율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 정부를 진심으로 지원하고 있는 미국 전문가들에게 명분을 줄 필요가 있고, 국내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는 방어전략으로도 나쁘지 않다. 이제 기동전과 함께 진지전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yyi@hani.co.kr [관련 영상] 정세현·문정인의 2018 한반도 전망 | 한겨레TV
칼럼 |
[특파원 칼럼] 북한의 ‘이간질’보다 더 무서운 것들 / 이용인 |
워싱턴 특파원 ‘물샐틈없는’, ‘빛샐틈없는’ 한-미 동맹이라는 말이 풍미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다. 정부 당국자들은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표현할 수 있는 화려한 형용사를 찾는 데 골몰했다. 그리고 미국 당국자들한테서 그런 형용사가 나올 때마다 한-미 회담의 성과로 포장했다. 공개적으로 표면화된 갈등이 적었다는 의미에선 한-미 동맹은 견고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전략적 인내’라는 한-미의 대북정책 속에서 북핵 문제는 더 악화됐고, 이제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위협으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고 선언했을 때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더 큰 책임을 지울 수도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반성은, 동맹이 원하는 것이면 거의 모두를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한국 정부가 사실상 운전석에 앉았다. 그래서 성 김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2014년 말 방북 시도는 박근혜 정부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를 미국에 사실상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개성공단의 가치를 나름 평가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깜짝 놀랐지만, ‘동맹이 원하니’라며 수용했다. 동맹 간 파열음 방지를 최선의 가치로 여긴 결과는 ‘깜깜이’ 대북정책과 북핵 능력 고도화였다. 최근 북한의 신년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놓고 벌써부터 한국과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동맹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한의 ‘이간질’에 한국 정부가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첫째, 솔직히 이들의 분석에선 지적 게으름이 느껴진다. 북한의 의도는 몇십년째 똑같고, 결국 북한과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정보 아닌가? 북한의 ‘나쁜 의도’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대북 인식의 지평을 한걸음도 넓히지 못할 것이다. 둘째, 한-미 간 균열을 우려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목소리에선 ‘갑질’ 심리가 느껴진다. 미국이 하는 대로 따라오라는, 혹은 따라가라는 안팎의 무언의 압력이다. 균열을 우려한다면서, 실제로는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한 균열의 명분을 찾는 것처럼 비친다. 하다못해 미국 50개주 사이에도 ‘빛샐틈없는’ 공조는 이뤄지지 않는다. 셋째, 북한의 의도가 ‘이간질’이라고 하더라도, 어감이 좋지 않을 뿐 모든 외교에는 어느 정도 이간질이라는 방책이 포함돼 있다. 이른바 ‘분할과 지배’(divide and rule)이다. 일본은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며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하지 않는가?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한-중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가? 북한의 의도가 이간질이라고 정말로 확신한다면, 힘겨루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지 말고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오히려 지금 한-미 간에 가장 큰 잠재적인 갈등 요인이 있다면, 미국 조야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주한미군 철수 위협’이라고 본다. 동맹국인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트럼프 행정부한테 중국의 ‘사드 보복’ 못지않은 완력 행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럼에도, 어렵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최선을 다해 트럼프 행정부와 조율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 정부를 진심으로 지원하고 있는 미국 전문가들에게 명분을 줄 필요가 있고, 국내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는 방어전략으로도 나쁘지 않다. 이제 기동전과 함께 진지전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yyi@hani.co.kr [관련 영상] 정세현·문정인의 2018 한반도 전망 | 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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