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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2 18:08 수정 : 2019.08.22 19:17

정인환
베이징 특파원

사이먼 청이 사라진 것은 지난 8일이다. 홍콩에서 인접한 중국 본토 선전으로 당일치기 출장을 떠났던 그가, 돌아오는 길에 연락이 끊겼다. 홍콩에서 태어나 대만국립대학과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공부한 그는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에서 일한다.

그가 중국에 갈 때 외교관 여권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홍콩 프리프레스>는 실종되던 날 밤 10시37분께 그가 대만인 여자친구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조금 있으면 고속철이 경계를 넘어 홍콩으로 진입해. 나를 위해 기도해줘.”

가족들은 수소문 끝에 이틀 뒤인 10일 홍콩 이민국을 통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민국 쪽은 청이 중국 본토에서 ‘행정구금’됐다고 밝혔다. 구금의 사유도, 구금된 장소도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의 행정구금은 최장 15일간 이어질 수 있다.

애초 청의 행방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했던 중국 당국은 21일에야 구금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청이 “중화인민공화국 치안관리처벌법 위반으로 선전 경찰에 의해 15일 행정구금에 처해졌다”고 밝혔다. 겅 대변인 역시 청의 혐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앞서 영국 외무부는 20일 청의 실종에 대해 “극히 우려스럽다”는 논평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겅 대변인은 “그는 홍콩인으로, 영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며 “순전히 중국 내부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홍콩인도 그렇게 생각할까?

사이먼 청 실종 사건은 홍콩인들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홍콩인이면 누구라도 언제든 ‘사이먼 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인 인도 조례’가 촉발한 홍콩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가 왜 11주째 이어지고 있는지, 중국 당국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 듯싶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22일 홍콩 중문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전화면접 조사 결과를 전했다. 응답자의 42%는 ‘중국에 대한 소속감이 없다’고 답했다. ‘소속감을 느낀다’는 답변은 22%에 그쳤다. 나머지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반면 ‘홍콩에 대한 소속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전체의 77%에 이르렀다. 홍콩인의 정체성은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에 가깝다는 뜻이다.

반송중 시위가 꼭 70일째를 맞은 지난 18일 홍콩에는 이른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렸다. 홍콩 경찰 당국은 시내 중심가 빅토리아 공원으로 집회 장소를 제한했지만, 공원 일대는 집회 예정시각인 오후 2시 이전부터 불어난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공원 인근 지하철 틴하우역을 중심으로 코즈웨이베이-포트리스힐까지 일대 지하철역 출구가 밀려든 인파로 꽉 찼다. 우산을 든 얼굴마다 웃고 있었다.

2016년 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제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 열차가 멈춰섰다. 인파로 가득 찬 플랫폼에 내려서기도 버거웠다. 사람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계단을 하나씩 올라 지하철역 출입구에 서기까지 40분 남짓이 걸렸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해질 정도였지만, 곁에 선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이날 처음으로 서울에서만 100만개 이상의 촛불이 켜졌다.

18일 오후 3시13분께, 홍콩의 빗줄기가 굵어졌다. 빅토리아 공원 부근은 뒷골목까지 인파가 들어찼다. 갑작스러운 장대비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급히 우산을 꺼내 쓰던 이들 사이에서 다시 웃음이 번졌다. 이윽고 구호가 메아리쳤다. “홍콩런, 짜요! 홍콩런, 짜요!”(홍콩인, 힘내라!)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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