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얼굴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장에서처럼 좋았던 적이 드문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경질 사실을 트위터로 발표하고 두 시간 뒤 기자들 앞에 선 폼페이오 장관은 ‘볼턴 경질을 몰랐느냐’는 질문에 “전혀 놀랍지 않다”고 답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는 “이번 일만 놓고 하는 말은 아니다”며 쓸어담듯 몇마디 덧붙였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대외정책을 놓고 고락을 함께했을 동료가 축출된 데 속이 후련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볼턴의 퇴장과 함께 폼페이오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초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거쳐 지난해 4월부터 외교수장을 맡고 있는 폼페이오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독보적 영향력을 갖춘 일인자로 우뚝 섰다.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보좌할 볼턴 후임에는 폼페이오 밑에서 인질담당 특사로 일했던 측근인 로버트 오브라이언이 지명됐다. 국방부의 마크 에스퍼 장관은 폼페이오의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 동기인데, 그나마 취임한 지 두 달 된 신참이다. 트럼프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의 헨리 키신저처럼 폼페이오에게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직시키는 방안을 논의했었다고 시인할 정도이니, 폼페이오에 대한 그의 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폼페이오는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대외정책에 관한 발언에서 트럼프와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인물로 꼽힌다. 그는 공화당 내 강경보수 파벌인 티파티 출신이지만 주요 현안들에서 강온이 뒤섞인 트럼프와 보조를 맞춰왔다. 예컨대 그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볼턴과 달리, 즉답을 피하는 식으로 트럼프와의 이견 노출을 자제했다. 트럼프는 지난 연말 한 인터뷰에서 “폼페이오와 말다툼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폼페이오가 트럼프를 정책 측면에서 안내하고 있는 것인지, 그의 의중을 잘 예측하는 것인지를 놓고는 미국 내에서도 분석이 갈린다. 하지만 볼턴이라는 악동이 제거된 미 행정부에서 앞으로 폼페이오의 발언과 행보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방 하원의원(캔자스주) 3선을 지낸 그를 놓고 2020년 11월 상원의원 출마설과 차차기 대선 도전설이 끊이지 않는 등 정치적 몸값도 계속 오르고 있다. 폼페이오 시대가 열린다고 해서 그가 행정부 내에서 트럼프를 견인 또는 견제하는 수준까지 나아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폼페이오의 위상 강화는 충성파들로만 채워지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현실을 보여준다. 집권 2년7개월 사이 외교안보 분야에서만 볼턴 전 보좌관에 앞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2018년 3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2018년 3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2018년 12월),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2019년 8월)이 트럼프와 마찰을 빚다가 자리를 떠났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2018년 11월)이나 존 켈리 대통령 비서실장(2018년 12월), 키어스천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2019년 4월)도 트럼프 눈밖에 나서 그만둔 경우다. 트럼프가 최근 농담처럼 한 발언이 미 행정부가 작동하는 방식의 진실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와 일하는 건 아주 재미있고 매우 쉽다. 왜 쉬운지 아나? 내가 모든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할 필요가 없다.” 이걸 못 견뎌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있기 어렵다. 트럼프가 그걸 용납하지도 않는다. 폼페이오 시대라는 것도 결국 트럼프 손바닥 안에서의 얘기다. jaybee@hani.co.kr
국제일반 |
[특파원 칼럼] 폼페이오 시대? 트럼프 천하! / 황준범 |
워싱턴 특파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얼굴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장에서처럼 좋았던 적이 드문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경질 사실을 트위터로 발표하고 두 시간 뒤 기자들 앞에 선 폼페이오 장관은 ‘볼턴 경질을 몰랐느냐’는 질문에 “전혀 놀랍지 않다”고 답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는 “이번 일만 놓고 하는 말은 아니다”며 쓸어담듯 몇마디 덧붙였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대외정책을 놓고 고락을 함께했을 동료가 축출된 데 속이 후련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볼턴의 퇴장과 함께 폼페이오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초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거쳐 지난해 4월부터 외교수장을 맡고 있는 폼페이오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독보적 영향력을 갖춘 일인자로 우뚝 섰다.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보좌할 볼턴 후임에는 폼페이오 밑에서 인질담당 특사로 일했던 측근인 로버트 오브라이언이 지명됐다. 국방부의 마크 에스퍼 장관은 폼페이오의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 동기인데, 그나마 취임한 지 두 달 된 신참이다. 트럼프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의 헨리 키신저처럼 폼페이오에게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직시키는 방안을 논의했었다고 시인할 정도이니, 폼페이오에 대한 그의 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폼페이오는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대외정책에 관한 발언에서 트럼프와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인물로 꼽힌다. 그는 공화당 내 강경보수 파벌인 티파티 출신이지만 주요 현안들에서 강온이 뒤섞인 트럼프와 보조를 맞춰왔다. 예컨대 그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볼턴과 달리, 즉답을 피하는 식으로 트럼프와의 이견 노출을 자제했다. 트럼프는 지난 연말 한 인터뷰에서 “폼페이오와 말다툼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폼페이오가 트럼프를 정책 측면에서 안내하고 있는 것인지, 그의 의중을 잘 예측하는 것인지를 놓고는 미국 내에서도 분석이 갈린다. 하지만 볼턴이라는 악동이 제거된 미 행정부에서 앞으로 폼페이오의 발언과 행보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방 하원의원(캔자스주) 3선을 지낸 그를 놓고 2020년 11월 상원의원 출마설과 차차기 대선 도전설이 끊이지 않는 등 정치적 몸값도 계속 오르고 있다. 폼페이오 시대가 열린다고 해서 그가 행정부 내에서 트럼프를 견인 또는 견제하는 수준까지 나아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폼페이오의 위상 강화는 충성파들로만 채워지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현실을 보여준다. 집권 2년7개월 사이 외교안보 분야에서만 볼턴 전 보좌관에 앞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2018년 3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2018년 3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2018년 12월),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2019년 8월)이 트럼프와 마찰을 빚다가 자리를 떠났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2018년 11월)이나 존 켈리 대통령 비서실장(2018년 12월), 키어스천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2019년 4월)도 트럼프 눈밖에 나서 그만둔 경우다. 트럼프가 최근 농담처럼 한 발언이 미 행정부가 작동하는 방식의 진실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와 일하는 건 아주 재미있고 매우 쉽다. 왜 쉬운지 아나? 내가 모든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할 필요가 없다.” 이걸 못 견뎌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있기 어렵다. 트럼프가 그걸 용납하지도 않는다. 폼페이오 시대라는 것도 결국 트럼프 손바닥 안에서의 얘기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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