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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17 19:24 수정 : 2013.04.17 19:24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동방에서 투르크(튀르크)족이 크게 발흥해 오늘날 터키 지역의 비잔틴 제국 영토를 모두 점령했다. 경제적·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을 빼앗긴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콤네노스는 로마의 교황 우르바누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로마의 교황과 비잔틴의 황제 사이의 불화는 연조가 깊었다. 하지만 교회의 수장으로서 예수의 무덤이 있는 성지 예루살렘이 이교도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었다. 우르바누스는 투르크로 진격을 결심했다.

그러나 어떻게 실행에 옮긴단 말인가? 서유럽의 제후들은 서로 간에 이권과 자존심을 다투며 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들의 힘을 규합할 수 있을 것인가? 1095년 클레르몽의 종교회의에서 교황은 자신이 찾은 대안을 연설로 피력했고, 그것이 제1차 십자군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후대 기록자들의 판본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기에 교황의 말이 정확하게 전해진 것은 아니라 해도, 내용이 대동소이하기에 그의 진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가 찾은 방안은 분란의 내적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려 서로를 노려보던 눈초리를 공동의 대상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당신들은 바다로 갇혀 있고 산으로 둘러싸여 충분치 못한 식량을 산출하는 좁은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죽이고 전쟁을 하며 공멸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들 사이의 증오를 떨쳐버리고, 전쟁을 종식시키시오. 거룩한 묘역에 이르는 길에 나서, 사악한 인종으로부터 그 땅을 탈취하여 당신들의 것으로 만드시오.” 게다가 그 길에 나선다면 저지른 모든 죄의 사함을 받아 “하늘의 왕국에서 불멸의 영광”을 보장받았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종교 지도자가 발설할 내용은 아닌 듯하다. 시대의 한계라는 제약을 감안해서 이해해야 할 게다. 하지만 전쟁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기본적인 전략적 수사학이 표현되었다는 점에서는 지금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십자군 전쟁도 광기로 끝났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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