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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9 19:05 수정 : 2013.05.29 19:05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1911년 3월 뉴욕 맨해튼에 화재가 발생했다. 90년 뒤 세계무역센터가 피격되기 전까지 뉴욕시에서 두번째로 인명 피해가 큰 사고였다. 트라이앵글 블라우스 공장 재단실에서 누군가 부주의하게 옷감 자투리가 쌓인 쓰레기통에 담배꽁초를 버림으로써 일어난 이 참사로 146명의 의류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희생자 대다수는 최근에 입국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유대계와 이탈리아계 여성들이었다.

공장은 10층 건물의 8~10층을 사용했다. 소방관들이 신속하게 도착했음에도 화염을 잡을 방도가 없었다. 당시에는 사다리가 기껏해야 6층까지밖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망자가 늘어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잠겨 있었다. 노동자들이 옷가지를 훔쳐가고, 몰래 그곳에서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을 방지한다는 이유였다. 탈출구가 막힌 그들은 타서 죽고, 질식해 죽고, 또는 바닥에 떨어져 죽었다.

갑의 횡포가 명백했다. 경영주들은 마침 공장 구경을 시킨다고 자녀들과 함께 현장에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무사히 대피했다. 이후 벌어진 재판에서 문이 잠긴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검사 측에서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방면되었다. 그러나 민사소송에서는 희생자 한명당 75달러를 배상하라는 평결이 있었다. 보험회사에서는 경영주들에게 일인당 400달러꼴로 지급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암울하다. 하지만 이 사고로 노동자들은 교훈을 배워,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통한 연대가 강화되었다. 뉴욕시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노동 현장의 안전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2008년에는 “트라이앵글 화재를 기억하라”는 조직이 결성되어 2011년에 화재 100주년을 추념하는 행사를 거행했다.

남양유업으로 인한 갑에 대한 을의 반란은 한번 들끓고 말 일이 아니다. 합당한 교훈적 결말을 끈질기게 이끌어내야 할 일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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