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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20 19:11 수정 : 2013.06.20 19:11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내 생각으로 사고의 폭과 깊이에서 14세기 말에 가장 탁월했던 학자는 르네상스의 본향인 이탈리아나 다른 유럽 국가에 있지 않았다. 인간 삶의 기본적 요인인 시간과 공간에 대해, 그리고 그 둘 사이의 함수관계에 대해 빼어난 식견을 보여주었던 이 인물은 튀니지 출신 이슬람 지식인 이븐 할둔이었다.

이븐 할둔은 본디 베르베르인의 역사를 쓰려다가 ‘보편사’를 쓰게 되었다. 그 책의 첫 권은 <무카디마>라고 알려져 있는데 독립적인 책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사회 갈등 이론을 만들어냈다. 어떤 사회가 다른 지역을 점령하여 지배 문화가 되면 곧 쇠퇴기가 뒤따른다는 내용이다. 정복한 집단은 정복당한 문명인에 비해 야만인이다. 하지만 정복된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키면서 그 문명의 세련된 측면에 매료된다. 즉 문학이나 예술 같은 문화적 관례에 동화되며 약화되어 또 다른 야만인들에게 정복당하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븐 할둔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 이론의 선구자로도 알려져 있다. 모든 가치는 노동으로부터 오며, 가치를 계속 부가시키는 과정에서 경제가 이루어진다. 노동이 기술과 결합된 결과 상품은 더 높은 가격에 팔린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류의 문명권을 그 주거지와 생활 방식에 따라 구분하기도 했다. 비코나 몽테스키외의 선구이기도 한 셈이다. 그가 찾으려 했던 것은 문명권의 발생, 성장, 몰락을 지배하는 법칙이었고, 그것을 통해 그는 역사의 궁극적 의미를 알려 했다.

넘쳐나는 혜안을 펼치기에 앞서 그는 학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경계한다. 신조 때문에 객관성을 잃는 것, 자료에 대한 과신, 본래 의도의 곡해, 진리에 대한 오도된 믿음, 맥락을 찾지 못하는 무능력,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의 호의를 얻으려는 욕구, 사회 변화를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무지가 그것이다. 마치 우리 사회의 병폐 목록인 것 같다.

<무카디마>는 <역사서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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