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20:11
수정 : 2013.07.0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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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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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의 내막을 살피면 매카시는 오히려 꼭두각시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을 공직, 대학, 무대, 은막에서 떠나게 만든 위세를 지녔지만, 사실 그는 결핍된 지성과 분별을 과도한 출세욕과 허세로 메꾸려던 허풍선이었다. 정작 실질적인 이득을 취한 이들은 그를 교묘히, 치밀하게 조종했던 정치인들이었다.
미국은 양당 체제가 일찍부터 자리잡은 나라다. 극히 단순화시켜, 진보를 대변하는 민주당과 보수를 표방하는 공화당은 서로 더 큰 의석을 차지하려고 전력을 기울인다. 반공을 내세운 매카시가 공화당이 이용할 물건이었음은 확실하다. 공화당 의원들의 측면 지원 아래 매카시는 증거가 없는데도 돌출 발언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위협이 가시화되며 민주당이 공산주의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졌다. 대놓고 정적을 ‘공산주의자’, ‘스탈린주의자’로 매도하는 의원까지 있었다. 실로 민주당은 많은 의석을 잃었고, 매카시의 입지는 탄탄해졌다. ‘북풍’은 미국에도 있었던 것이다.
반공을 무기로 정치적 미래를 확고하게 다지려는 자들도 합세했다. 대표적 인물이 리처드 닉슨이었다. 매카시 이전부터 공산주의자 색출로 정치적 명성을 얻던 그는 매카시의 스승이 되었다. 실상 공산주의의 실체조차 알지 못하며 떠벌리던 매카시에게 닉슨은 미국 내 공산주의의 현황을 설명해줬고, 그 브리핑에 에프비아이의 후버 국장이 도움을 줬다. 그러나 이익 관계로 만난 사람들은 이익 관계로 헤어진다. 매카시와 닉슨이 그랬다. 닉슨이 밀워키에서 유세할 때 매카시가 지원하려고 방문했다. 그러나 닉슨은 이미 정치적으로 파산한 매카시를 외면했고, 그는 연단 모퉁이에서 눈물을 흘렸다 한다.
매카시는 알코올중독으로 48살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를 승계할 보궐선거에서 후보들은 모두 매카시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다. 닉슨은 유일하게 사임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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