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24 19:06
수정 : 2013.07.2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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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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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카르타고를 무력화시킨 뒤 동쪽으로 눈을 돌려 마케도니아의 지배 아래 있던 그리스 세계를 점령했다. 이때 그리스에서 1000명의 유명 인사를 인질로 잡아갔는데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스키피오의 스승이자 친구가 됨으로써 인질로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하며 로마의 전쟁을 관찰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가 기록한 역사는 로마의 급성장에 대한 외부인의 보고서와 같았다. 그는 로마의 팽창 과정을 단순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그 원인을 천착하려 했다. 문화적으로 우월했던 그리스 출신으로서 미개국이라 여겼던 로마가 강대국으로 올라선 일을 경이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플라톤을 위시하여 고대인들은 정치 체제가 순환한다고 믿었다. 원시 상태에서는 나약한 개인들이 단결하여 힘을 얻는 데 강한 자들이 주도한다. 그 결과 군주제가 등장하는데 왕은 사리에 맞게 다스리며 사람들을 보호한다. 그러나 세대가 지나면서 후손은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여기며 폭력과 사치와 방탕에 탐닉하는 폭군이 된다. 귀족들이 이에 반발하여 폭군을 몰아내며 귀족제가 성립된다. 그들은 공동의 이익을 행동 지침으로 삼는다. 반면 그들의 후손은 권력을 자신들의 권리라 생각하며 탐욕에 빠져 과두제로 바뀐다. 이에 민중이 반발하여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그들은 공익을 생각하며 다스리나 과두제의 경험이 없는 후손에 이르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망각하며 선동에 쉽게 흔들려 우중정치로 바뀐다.
로마는 집정관이 군주제를, 원로원이 귀족제를, 민회가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혼합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체제의 순환에서 벗어나 있어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고 폴리비오스는 판단했다. 이렇듯 “상호 견제를 위한 권력의 분산은 어떠한 위기에도 충실히 대처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폭군의 지배와 과두제와 우중정치라는 최악의 조합에 빠진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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