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12 19:33
수정 : 2013.12.12 19:33
|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
2004년 11월 우크라이나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현직 대통령 쿠치마는 존경받던 언론인 게오르기 곤가제를 납치·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아 인기가 떨어진 상태였다. 그는 총리인 야누코비치를 내세워 계속 지배권을 행사하려 했다. 그의 반대편에는 민주화의 여망을 실현시킬 인물로 각광받던 유셴코가 있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가 없었기에 결선 투표에서 둘이 격돌했다. 출구조사 결과는 유셴코의 11%포인트 우세였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야누코비치의 승리라는 잠정 집계를 발표했다. 유셴코 지지자들은 즉시 부정선거와 개표 조작 결과에 불복하는 시민 저항운동에 나섰다. 실로 선거 두 달 전에는 러시아의 개입이 의심되는 독살 기도로 유셴코의 피부가 극심하게 손상되는 참사까지 있었던 참이었다.
수도 키예프의 마이단(독립) 광장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 수십만이 모였다. 유셴코 지원자를 상징하던 오렌지는 이제 자유와 정의의 색깔이 되었다. 오렌지색 옷을 입거나 깃발을 든 사람들이 군대의 개입이나 러시아의 침공이라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며 평화 시위를 지속했다. 시민 불복종과 연좌 농성과 파업이 이어졌다. 그들은 내적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민주화, 외적으로는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원했던 것이다. 국내외 언론도 신속하게 보도하면서 시위자들을 지지했다.
마침내 대법원에서 재투표를 명령했다.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 속에 공정하게 치러진 12월26일의 투표는 유셴코의 확연한 승리로 귀결되었다. 그가 한 달 뒤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오렌지 혁명은 끝이 났다. 희생을 무릅쓴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 외에도 이 혁명에서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국가의 기밀을 책임진 비밀 정보원들이 유셴코를 은밀히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절도와 폭력과 부정부패의 전과가 있는 야누코비치가 지휘하는 체계 아래 있기 싫었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국가’ 정보원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