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25 19:24
수정 : 2013.12.2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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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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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년의 헤이스팅스 전투는 영국에서 앵글로색슨 왕조의 종말과 노르만 왕조의 출발을 알리는 계기였다. 그해 초 영국의 참회왕 에드워드가 사망하면서 해럴드를 후계자로 지명하자 노르망디를 지배하고 있던 윌리엄이 격노해 영국을 침공하며 벌어진 전투였다. 에드워드는 노르만계의 먼 친척 윌리엄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고, 해럴드도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했기에 노한 것이다.
윌리엄은 쉽게 영국에 상륙했다. 해럴드가 북쪽의 또다른 침입자들을 격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황급히 달려온 해럴드가 윌리엄과 맞섰다. 하루 종일 벌어진 건곤일척의 백병전에서 해럴드가 전사하고 그의 부대가 괴멸되었다. 윌리엄은 영국의 왕위에 올라 그해 크리스마스에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서 대관식을 열었다. 그것은 교회의 지지까지 확보하게 만든 행사였다.
점령은 했지만 수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불리했던 노르만인들로 넓은 지역을 안정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훨씬 어려운 문제였다. 그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윌리엄은 지배 계층에서 앵글로색슨인을 제거하고 노르만인으로 대체했다. 고위 성직자들도 노르만인으로 대체해 나갔다. 그러한 결말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문서의 하나로 꼽히는 <둠즈데이 북>이다.
일종의 토지대장인 이 문서는 영국을 정복하고 거의 정확하게 20년이 지난 뒤에 작성되었다. 세입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왕국 전체 토지 소유자들의 보유 현황을 기록한 이 장부를 보면 당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200여명의 제후 가운데 앵글로색슨인은 단 두 명밖에 없었다. 훗날 이 문서에 ‘최후의 심판의 날’을 뜻하는 ‘둠즈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도 앵글로색슨인들의 처지에서 보면 이해가 갈 만하다.
이 토지대장을 만들 계획을 세웠던 것도 전해의 크리스마스였으니, 이래저래 정복왕 윌리엄은 성탄절과 인연이 많은 인물이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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