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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26 18:19 수정 : 2017.10.26 21:10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한 초상화에 꽂힌 열아홉의 처자가 그 그림의 포스터를 구입해 16년 동안 어디를 가든 거처에 걸어 놓았다. 순수한 듯하나 노련해 보이고, 슬픈 듯하나 기뻐 보이며, 갈구하는 듯하나 체념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막힌 모순의 표정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화가보다는 모델이 이 그림을 지배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그는 이 그림에 감춰진 이야기를 추적했다. 그리하여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다룬 동명의 소설이 만들어졌다.

베르메르가 살았던 델프트를 방문하여 그 시대의 역사를 알아보고, 베르메르뿐 아니라 당시 다른 화가들의 그림도 연구하며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임신한 몸으로 8개월에 걸쳐 체력의 한계까지 느끼며 탈고했다. 2000년 1월에 발간된 그 소설은 통산 3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가며 영화로 만들어졌다. 피터 웨버가 감독한 이 영화에선 스칼렛 요한슨이 베르메르의 하녀이자 모델 그리트의 역을 맡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영화는 원작 소설과 결말에서 많이 다르다. 영화는 집에서 쫓겨난 그리트에게 화가의 요리사가 진주 귀고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에서는 상황이 한결 더 상세하다. 그리트는 자신을 좋아하던 푸줏간 집 아들의 부인이 되었는데, 10년 뒤 화가가 사망하고 그 집으로 부름을 받는다. 부채 관계를 청산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달리 베르메르는 그리트가 그 귀고리를 받아주기 원한다는 임종의 부탁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리트는 남의 아내로서, 또한 하녀로서도 그것을 받을 수 없다며 그것을 전당포에 잡히고 빚을 갚는다. 남은 돈은 평생 쓰지 않고 간직한다.

역사가들은 그 소설조차 예술 작품의 창작에 따른 가공의 이야기일 뿐이며, 그리트마저도 허구의 인물이라고 간단하게 일축한다. 역사와 소설과 영화가 같은 인물들에 대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다. 표현 양식의 차이일 뿐일까?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려는 대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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