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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9 18:44 수정 : 2018.03.29 19:25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세모면 울려 퍼지는 ‘올드 랭 사인’의 가사를 완성한 사람으로 이 칼럼을 통해 소개했던 로버트 번스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가장 애호하는 국민 시인이다. 낭만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지만, 스코틀랜드의 언어로 시를 쓰고 그곳의 민요를 채록했던 그는 19세기에 이미 스코틀랜드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심지어 그의 생일은 스코틀랜드에서 국경일로 기념한다.

그에게는 “쟁기질하는 시인”이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소작농이었던 부모의 뒤를 이어 들판에서 밭일을 하며 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시를 처음 쓰게 된 계기도 열다섯의 소년 번스가 추수 일을 거들어주던 소녀에게 바치기 위한 것이었으니, 농사일을 하면서 겪게 된 자그마한 일상사들이 그의 시작에 소재를 제공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쥐에게’는 그런 시 중의 하나다.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이 중편 소설 하나를 써 놓은 뒤 이 시를 읽고 영감을 얻어 제목을 <생쥐와 인간>이라고 정했다니, 그다지 길진 않아도 생각할 거리는 풍부하게 제시한다.

번스는 밭을 갈다가 우연히 들쥐의 둥지를 부수게 되었다. 쥐도 가족들과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이었을 텐데 그것을 훼손하였다는 죄책감이 시인에게 시상이 떠오르도록 만들었다. 이 이야기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번스의 동생이 증언한다. 번스는 이 시를 지을 때 손에 여전히 쥐의 둥지를 부순 쟁기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메마르고 텅 빈 땅에/ 겨울은 성큼 다가오니/ 땅 아래 편히 쉬려고/ 파 놓은 굴 위로/ 잔인한 쟁기가 지나가며/ 우르르, 무너뜨렸구나.” 그 쥐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이유는 많이 먹지 않기 때문이다. “스물네 자락 중 이삭 하나라면/ 작은 요구일 뿐인데,” 그럼에도 쥐와 인간의 관계는 “때로 어긋나는 법이거늘.”

로버트 번스는 이곳의 식성 좋은 큰 쥐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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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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