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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30 16:54 수정 : 2019.05.30 19:20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는 서인도제도에서 원주민들에게 자행되던 참담한 만행을 저지하고 그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여 “인디오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받았던 수도사였다. 그는 이 직함을 갖고 에스파냐의 식민지에서 새로 부임하는 총독에게 인디오의 문제에 대해 조언을 했고, 법정에서 그들을 대변했다. 또한 그는 <서인도 제도의 파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라는 책자를 통해 식민지의 실상을 알림으로써 자신의 명분에 신빙성을 더했다.

그러나 그 길이 처음부터 그가 가려던 곳은 아니었다. 그는 원주민을 교화한다는 명목 아래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던 농장을 가리키는 엥코미엔다 체제의 수혜자였다. 그는 농장을 소유했고 당연히 노예도 거느렸다. 스스로 노예사냥에 나서며 원주민 부족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보통 그가 개심을 했던 결정적인 이유로는 1513년 쿠바 원정에 참여하면서 에스파냐 군대가 원주민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장면들을 목격했던 사실을 꼽는다. 그는 “이곳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잔학성을 목격했다”고 술회했던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지진 않았다 할지라도 1510년 산토도밍고에서 마주쳤던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사들 중에서도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의 분노에 찬 설교가 라스카사스에게 남겨놓은 강한 인상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었다. 여전히 엥코미엔다 체제를 옹호하던 그에게 그 설교사는 이렇게 일갈했다. “당신들은 어떤 정당성을 갖고 이 인디오들을 잔인하고 끔찍하게 노예로 부리는가? 조용히 평화롭게 자신의 땅을 갈던 이들을 가공할 전쟁 속으로 몰아넣을 권위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그들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죽인다. 더 많은 금을 착취하기 위해서.”

그것이 라스카사스를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가 그 설교를 자신의 기록 속에 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무릇 목회자의 설교란 인간의 영혼을 옳은 곳으로 이끌어야 하거늘, 그 부끄러운 망언들은 누구의 목소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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