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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15 19:52 수정 : 2016.02.15 19:52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한국방송>(KBS)의 보도가 ‘정부 발표 옮기기’ 수준에 머물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지난 10일 발표 이후 ‘뉴스 9’에는 우려나 반대의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그나마 있다면 여야 반응을 다루는 리포트에서 야당의 주장을 짧게 소개하는 정도다. 지난 수십년간의 ‘주화론’에서 갑작스레 ‘주전론’으로 선회하는 국가 정책 변화에 우려나 반대가 없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다. 다양한 의견을 전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데 능력이 부쳐서인지, 아니면 정부만 옳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 정부만을 취재원으로 한 단순 보도가 지나치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하기 위해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초강력 카드를 꺼내든 겁니다.” “선제적인 제재 조치를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이끌겠다는 의지도 담겼습니다.” 이렇듯 취재원과 거리를 두기는커녕 그 뜻까지 헤아리는 ‘전지적 작가 시점’(?)도 많다. “중국 기업들이 북한과 거래를 끊도록 만들어야 북한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관찰자가 아닌 치어리더의 역할도 삼가지 않는다. 북한에서 발생할 “사태의 여파”를 주로 보도하고 관련 기업 등 남한의 피해에는 소홀하다. “정부와 국제사회는 이 돈이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무기 개발에도 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라는 주장 뒤에 정부와 ‘국제사회’가 그렇게 보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다.(국제사회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김정은 정권 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라는 과감한 주장 뒤에 누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가 없다. 너무도 쉽게 뉴스를 만든다는 인상이다.

단순히 정부 발표만 요약해주려면 귀한 사회자원인 수신료와 전파를 쓰는 공영방송까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사영방송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품질을 위해 공영방송이 있다. 중요 사태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분석으로 사회적 지혜가 도출되도록 돕는 것이 이것의 역할이다. 위기상황에 ‘국론통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섣부른 주전론이나 주화론은 자칫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신뢰성 높은 정보와 분석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지 언론이 감시해야 한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는 전시에도 냉정한 태도를 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비시는 자국 정부나 군대를 ‘우리 정부’나 ‘우리 군’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대신 ‘영국 정부’나 ‘영국군’이 “이러저렇게 주장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한 기자는 “영국 정부의 말을 믿는다면”이라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2003년 이라크전쟁 때 적국의 주장도 꼭 병렬하는 것에 불만인 국수주의자들은 비비시가 ‘바그다드 방송공사’(Baghdad Broadcasting Corporation)의 약자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참전 명분이 된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부 보고서가 윤색되었다고 폭로한 일로 정부와 갈등을 빚다 해당 기자는 물론 이사장과 사장까지 물러난 일도 유명하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거리 두기’와 냉철한 사실관계 파악은 오히려 국가안보에 도움이 된다. 극심한 사회 혼란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자국 언론이 있다면 그 사회는 합리적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불투명한 상황일수록 정부를 포함한 취재원과 거리 두기에 더욱 철저해주길 기자들에게 부탁한다. 일이 잘못된다면 후일 “취재원이 말한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뿐”이라고 변명해봐야 역사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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