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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6 20:02 수정 : 2016.06.07 16:05

지난달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 혐오 현상인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다. 여성 혐오(misogyny)가 여성에 대한 차별, 편견, 비하, 증오를 모두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이 사건을 단순히 ‘정신질환자의 무차별 살인’라고 말하기 어렵다. 피의자가 남성들은 그냥 보낸 뒤 여성에게만 흉기를 휘둘렀다는 사실 자체로 여성들은 잠재해 있던 일상의 두려움을 바로 느꼈다고 한다. 여성들은 편견과 폭력의 위협 아래 살아간다.

방송은 여성 혐오를 부추기거나 이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옮긴다.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방송심의제도 특정 성별 영향 분석평가>(책임연구자 순천향대 심미선) 보고서를 보면 여성에 대한 편견은 드라마, 오락, 시사보도, 교양 등 장르를 불문하고 나타난다. 이것은 성 역할 고정관념 조장, 출산의 도구로서 여성 묘사, 주체성을 무시한 묘사, 외모 지상주의 조장, 성적 대상화, 성희롱·성폭력 정당화, 부적절한 성추행·성폭행 사건 보도, 성범죄·성매매에 대한 왜곡된 시각 전달 등의 모습을 보인다.

잘못된 현실 재현을 개선하기 위한 한 방법은 편견의 대상자들이 방송 제작과 규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피해를 경험하는 여성이 제작 및 규제 과정에 단순히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시각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한국의 방송사와 규제기구의 주요 직위에 여성의 존재는 미미하다. 우선, 정책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5명 모두가 남성이다. 방송 내용을 규제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9명 중에도 여성이 한 명도 없다. 남성들만 모여서 양성평등 문제(방송심의규정 제30조)를 결정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양성평등기본법은 정부기관에서 위원회를 구성할 때 한 성의 비율이 6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5인의 남성들이 선정하는 공영방송사 이사진의 남성 편향도 두드러진다. 한국방송(KBS) 이사 11명 중 여성은 단 2명이다. 문화방송(MBC) 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 및 감사 1명은 모두 남성이다. 교육방송(EBS)도 이사 8명 모두가 남성이다. 이들 이사가 선출하는 공영방송사 사장들 모두가 남성이며, 이들 남성 사장이 임명하는 방송사 임원 전원이 남성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사 이사 28명 중 여성은 단 2명이며, 사장 등 임원 23명 모두가 남성이라니!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윤정주 소장은 공영방송사들이 여성 의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 것은 리더십의 남성 편향성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방송사 리더십이 양성평등적이라면 한국방송의 문제적 파일럿 <본분 금메달>류의 프로그램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미국 방송 규제 기구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위원 5명 중 3명이 여성이다. 이 기구는 방송사들이 전체 고용에서 여성 등 소수집단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 방송 규제 기구 오프콤(Ofcom)은 위원 5명 중 위원장을 포함한 4명이 여성이다. 공영방송 비비시(BBC)를 규제하는 ‘비비시 트러스트’도 위원 12명 중 위원장을 포함해 여성이 5명이다. 비비시는 성비 불균형이 큰 방송기술 인력 30%를 2017년까지 여성으로 채운다는 약속을 내놓고 있다. 방송계 리더십이 극도로 남성편향적인 한국과 크게 대비되는 사례들이다. 이 사실 자체로 방송사나 방송규제기구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차별과 편견을 생생히 체감하는 셈이다. 남성 세계의 패거리 문화가 초래하는 방송 임명직의 편향성은 방송 인력의 다양성과 방송 내용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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